화창하다. 특수복지사업소 청렴교육을 하기 위해서 낙산행 버스를 탔다. 완행버스였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다’란 말이 있지. 버스는 인제, 원통을 경유했다. 승객은 고작 4명. 나 빼면 3명. 2명은 인제에서 내렸다. 등산복 차림을 한 환갑나이 정도로 보이는 여성은 오색에서 내렸다. 혼자서 설악산 산행을 하기 위해 왔나보다. 등산은 무리지어 가도 좋고, 혼자서 떠나도 좋지. 고독을 씹으면서.
한계령을 넘었다. 처음 보는 풍경에 감탄했다. 산세가 험하고 길은 계속 위태로이 굽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과 끌림이 있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말랐다. 그래도 그 흐르는 물을 보고 있노라면 어디에서도 못 본, 사람의 손때타지 않은 깨끗함이 느껴졌다.
낙산까지 버스로 3시간이 걸렸다. 양양부터는 운전기사와 나 둘이었다. 낙산정류장에 내리니 바람이 무척 강했다. 주중 바닷가는 인적이 드물다. 그럼에도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회를 시켜놓고, 낮술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것이 여행이지. 바다를 따라 강의장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이미 직원들이 많이 와 있었다. 합천에서, 인천에서, 서울에서 전국에서 모인 직원들을 위해 나는 곧바로 강의를 준비했다. 그리고 강의를 시작했다. 1시간 45분을 했다. 일찍 끝내드린다고 했는데, 하다보니 할 말이 길었다. 졸린 시간 딱딱한 강의임에도 끝까지 경청해 주신 직원분들께 감사했다. 오기 전 재밌는 강의를 부탁받았는데, 청렴교육이 어디 그런가. 그래도 노력은 했다. 영상과 사례를 몇 개 더 넣었으니깐.
돌아가려는데 특수복지사업소 직원들이 가면서 먹으라고 떡과 밤, 과일을 가방에 듬뿍 넣어 주셨다. 쑥떡은 인천회관 직원들이 쑥을 뜯어 만들었고, 밤은 합천에서 온 햇밤이었다. 나는 강의장을 나왔다. 서울행 버스를 타기에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해변을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귤을 하나 까 먹었다. 푸른 바다를 봤다.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서두를 것도 없다. 쫓기는 것도 없다. 그저 바다와 나만 있을 뿐이다. 왜 나는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는가. 삶에 있어 무엇이 소중한가. 뭐가 그리 바쁜가. 웃음을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여러 생각들을 해 보았다. 아니 그냥 떠올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이라는 시간. 나를 위한 시간. 건강한 시간.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일을 위해 떠났는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생각이라는 걸 한 하루였다. 내 원위치로 가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