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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Cross (적십자)

기록물에 대한 생각

직장생활 16년차.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들을 글로 정리하기 위해서 사진을 찾던 중이었다. 내가 발령받아 근무했던 기관의 홍보담당자에게 내가 근무했을 당시 사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내가 홍보담당하면서 전문으로 사진을 배우고 찍은 것은 아니지만 어찌하다보니 잘 나온 사진도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기록사진인데 그 사진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자료관리를 못하는 것일까?

언론인 출신의 회장님이 계셨다. 활자에 대한 애정이 너무 많으셨다. 대단하셨다. 좋은 점도 있었다. 행사나 의전이 많았지만 본인이 단상에서 말할 내용은 직접 써 주셨다. 정말 훌륭하다. 10년이 지나도 이런 분이 없다. 넘치는 애정(?) 때문에 홍보책자에서 현수막에 이르기까지 모두 회장님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폰트, 색깔, 글자위치 등을 회장님에게 보고하고 여러차례 수정한 뒤에야 비로서 출력이 되었다.

회장님은 본인이 제작했던 현수막 시안을 칼라로 뽑아서 클리어화일 속에 넣어 두셨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몰랐다. 그것이 하나 둘 쌓을수록 기록이 되었다. 한 번 쓰고 버리면 아무 의미를 찾을 수 없겠지만 그것을 출력물로라도 모아두고 나면 기록이 되고, 사료가 되고, 업적이 된다.

내가 속한 회사는 올해로 창립 114주년을 맞았다. 출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홍보를 하였을까. 출범하던 1905년에는 어떻게 홍보를 하였을까. 그 이후 홍보물은 어떻게 변천되어 왔을까. 하지만 그 변천을 알 길은 요원하다. 남은 것보다 잃거나 버린 것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만일 자료가 남아 115년간의 홍보물로 전시를 하였다면 어땠을까.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추억하지 않을까.

전 남이섬 CEO 강우현 님의 <상상망치>를 읽어보면, 남버리는 은행잎도 잘 쓰면 관광상품이 되고, 굴러다니는 소주병도 재활용하면 예술작품이 된다고 한다. 100년간의 현수막, 홍보물 들만 잘 간직해도 근현대의 소중한 발자취를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