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최근 다산 정약용 선생님 관련 책과 기사를 자주 읽다보니 유배생활을 하셨던 강진과 다산초당이 은근 궁금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이지만 부처님이 때마침 월요일에 와 주셔서 선뜻 결정을 했다. 가는 김에 옆 도시인 해남까지 보고 오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5월 27일 아침, 청원 집에서 출발해 강진IC까지 꼬박 4시간을 운전했다. 전라도 끄트머리라지만 고속도로가 잘 연결돼 있어서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황금연휴라는데 오히려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좋았다.
강진에 내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무위사였다. 참고로 나는 절이 좋다. 그래서 새로운 절에 가 보면 늘 기쁘고 재밌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둔 무위사 앞마당은 절집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해탈문을 지나니 국보 제 13호 극락보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극락보전 안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했다.
무위사 극락보전
절을 나와 우리 부부는 강진읍으로 갔다. 읍내를 중심으로 관광지가 몰려 있었다. 영랑생가-금서당-사의재. 영랑생가를 먼저 들렀다. 영랑생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을 쓴 영랑 김윤식 선생님의 생가다. 둘 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그렇게 외우라던 시였다. 생가 뒤편으로 수령이 오래된 동백나무 다섯 그루가 집을 호위하고 있다. 옥천 출신 정지용 시인도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생가 앞에 있는 기념관도 주변 주택과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영랑생가
시문학파 기념관
영랑생가에 있는 300백년 수령의 동백나무
안내 표지판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니 금서당이 나왔다. 금서당은 그 옛날 김영랑 시인을 비롯해 많은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지역의 초등학교였다. 마당에서 읍내와 저멀리 강진만까지 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 강진만을 바라보면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집 안에서 안주인인 듯한 노부인이 차 마시고 그림 구경하고 가라고 하셔서 실내에 들어갔다. 이곳은 돌아가신 김영렬 화백 그림으로 가득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이곳을 지키며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그림 설명을 하시는 듯 했다. 우리 부부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해서 핸드폰을 건넸더니 사진을 잘 찍어 주셨다. 많이 해 보신 솜씨다. 매실차 한잔씩 먹고 찻값을 내고 나왔다.
금서당 전경
금서당 안주인께서 찍어준 우리 부부
골목을 따라 사의재에 갔다. 전국이 걷기열풍이다. 이곳 강진도 테마길이 있다. 바로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이다. 올초 읽은 책 <삶을 바꾼 만남 / 정민>에서 사의재의 존재를 알았다. 유배를 위해 다산이 강진 서문에 들어섰을 때 천주학쟁이 사학죄인을 받아 줄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산은 이때의 심정을 <상례사전의 서문>에 썼는데, 내용은 이렇다. “강진은 옛날 백제의 남쪽 변방이다. 낮고 비루한 데다 풍속이 남다르다. 이때에 이곳 백성이 유배 온 사람 보기를 큰 해독처럼 여겨, 가는 곳마다 문을 부수고 담을 허물며 달아났다. 노파 한 사람이 불쌍히 여겨 머물게 해 주었다. 이윽고 들창을 닫고서 밤낮 혼자서 지내니,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라고. 참 고마운 노파시다. 어려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돌봐주는 노파는 인도주의자이고, 선한사마리아인이다.
사의재
세 곳을 모두 돌고 나니 오후 세시가 되었다. 아차! 밥때를 놓친 것이다. 군청 앞에 있는 한정식 집을 갔더니 자리가 없다고 해서 나오고, 다음으로 간 한식집도 점심장사를 마쳤다고 퇴짜. 다음집도 준비가 안 된다며 미안하다고 해서 식사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남도 한정식을 먹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휴식을 조금 취한 뒤 다산초당엘 갔다. 다산선생의 학문이 집대성되었던 그곳. 제자 황상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사제 간의 정이 긷든 그곳. 이곳을 직접 와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우리 역사에 다산 정약용 선생만큼 강직하고, 해박하고, 실용적인 인물이 있었던가. 실패는 있되 포기는 없다고 했던가. 폐족의 신분으로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이 분은 나에게 참 높아 보인다. 평소 목민심서를 여러 번 읽으면서 감탄하는 대목은 200년 전 대안이 오늘날에도 살아있다는 점이다. 나도 가끔 목민심서 애민편을 자원봉사 교육 시 봉사자들에게 들려드릴 정도니깐. 사람이 많고 시간도 흘러서 초당을 내려와 백련사로 향했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 선생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
만덕산 백련사. 초당과는 가까운 거리다. 우리는 차로 이동했다. 아내는 나보고 걸어서 백련사까지 가라고 농을 걸었지만 날이 더워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백련사까지는 오르막을 조금 걸어 올라야 했다. 무위사도 백련사도 좋은 건 입장료를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백련사는 고려시대 8국사와 조선시대 8종사를 배출한 산사다. 동백이 필 때 오면 예쁘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백련사 대웅보전
백련사에서 내려다본 풍경
바쁘게 움직여 강진에서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다음코스인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이동했다. 강진을 둘러본 소감은 골목이 아름답고, 집들이 아름답고,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문화공간이 많더라는 것이다.
도시는 도시마다의 개성이 있다. 개성은 건물일 수도 있고, 음식일 수도 있고, 문화일 수도 있다. 그 밖에 요소도 있을 것이다. 강진은 분명 색다른 매력이 있고, 다시금 찾고 싶은 도시였다. 이번 여행을 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거듭 하며 나는 강진을 떠났다.
'일상다반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류탄라면 (0) | 2012.06.21 |
---|---|
땅끝에서 건진 희망, 해남을 가다 (1) | 2012.06.01 |
넌 할 수 있어 / 강산에 (0) | 2012.05.27 |
오월 편지 (1) | 2012.05.21 |
내 부모님의 첫 해외여행 (0) | 2012.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