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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땅끝에서 건진 희망, 해남을 가다

강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갔다. 남들이 하나둘 산을 걸어내려 올 시간에 나와 아내는 산사를 걸어 올라갔다. 7시 무렵이었는데 멀리서 종소리가 들렸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앞마당에 들어선 후 와불능선을 올려다보았다. 어쩜 그리 신기한지. 5년 전쯤 제주도에 갔을 때 유람선을 타고 한라산을 보았는데 마치 여인이 누워 있는 모습 같았다. 와불능선도 그때만큼 새롭고 오묘하다. 대흥사 가람은 독특해 보였다. 여러 사찰을 다녀보면 중심에 대웅전이 위치하고 있는데, 대흥사는 대웅전이 한쪽으로 비켜져 있다. 대웅전을 보고 뿌리가 이어진 연리근을 본 뒤 천불전에 들렀다. 스님방 명패가 붙은 방에 주인이 계시는지 검정색 고무신이 모아져 있다. 방안에서 수행을 하시나 왠지 궁금했지만 그냥 돌아섰다. 대흥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선사가 몸담았던 곳이다. 사람은 뭘 먹느냐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성정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늘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녹차를 마시는 사람은 각기 다르다고 생각한다. 녹차는 마음과 몸을 평화롭게 해 준다. 초의선사의 동상은 구경했지만, 표충사는 보수중이라 볼 수 없었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절 근처에서 잠을 잤다.

 

와불능선 (누워계신 부처님이 보이나요?)

 

 

대웅전

 

 

수행자의 방

 

 

초의선사 동상

 

 

528() 부처님오신날 아침.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 하루인지라 아침부터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서둘렀다. 일어나 씻고 달마산 미황사로 향했다. 부처님오신날이라 사람들로 붐빌테니 일찍 보고 나오자는 취지였다. 언덕을 차로 오르고, 주차장을 차를 대고, 오르막 계단을 걸어 올랐다. 절 마당은 연등으로 가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담았겠지. 나도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했다. 공양간에서 스님과 신도들은 참배객에게 드릴 밥과 떡,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달마산 미황사에서 내려다 본 풍경

 

 

연등이 가득한 대웅전 앞마당

 

 

수행자의 방 (미황사)

 

 

두륜사를 다 둘러보고 간 곳은 땅끝마을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안개가 시야를 가렸고, 모노레일마저 고장이 난 상태였다. 걸어서 전망대까지 갔다. 무더운 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다. 전망대에서 잠깐 에어콘 바람을 쐬고 다시 걸어내려왔다.

 

 

 

 

이동하던 중 송호 해변에서 잠시 내렸다. 아내가 바다를 걷고 싶어 했다. 확실히 요즘은 캠핑이 대세인가보다. 긴 바닷가에 텐트가 줄지어 있다. 캠핑도 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난 지금은 돌아다니는 게 좋다. 한 곳에 머물러 쉬는 것도 맛이지만, 세상엔 돌아다니며 봐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신발과 양발을 벗고 바다에 들어갔다. 공기는 덥지만 물 속은 시원했다. 백사장을 따라 걸었고, 그늘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 일어났다.

 

 

 

 

강진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해남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바로 해남 윤씨 집안 사람들이다.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이다. 땅끝마을을 찍고 이제는 다시 북진하면서 첫 번째로 들른 곳이 윤두서 고택이었다. 집 앞 안내판을 따라 한옥집 앞에 있으니 개가 마구 짖는다. 들어가질 못하고 있으니 마을 어르신 한 분이 그 집이 아니고 돌담을 돌아가라고 손짓해 주셔서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담쟁이가 점령한 담장을 뚜벅뚜벅 지나니 입구가 나왔다. 이 시간 아무도 방문한 사람이 없나보다. 잠시 앉았다가 자형 집을 둘러보고 나왔다.

 

윤두서 고택

 

 

 

골목길

 

 

다음 장소는 고산의 숨결이 살아있는 윤선도 유적지였다. 해남읍 연동리에 위치한 이 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 중 한 곳이란다. 먼저 윤선도유적전시관을 봤다. 국보나 보물은 없지만 해남 윤씨 집안의 내력과 시서화 전시품만으로도 배울 게 많았다. 해남 윤씨가는 백성을 사랑한 종가로도 유명하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해 옥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는 소식을 들은 윤효정이 관아에 찾아가 백성의 세금을 대신 내어주고 풀어준 일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하여 이때부터 해남 윤씨가는 삼개옥문적선지가라고 불렸단다. 고산 윤선도도 근검과 적선이 집안을 융성하게 되는 최고의 덕목임을 강조하며 실천했다. 공재 윤두서도 백성을 구할 방법을 강구하고 근검한 삶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고 한다. 훌륭한 집안은 훌륭한 가풍이 있다. 그 가풍에는 꼭 어려운 이를 돕는 마음이 녹아 있다. 권력을 잡았다고 돈을 가졌다고 우쭐댈 수는 있어도 명문가는 역시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녹우당, 어초은사당, 고산사당 등 종택을 둘러봤다.

 

고산 윤선도 유물전시관

 

 

미인도

 

 

녹우당

 

 

해남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은향다원이었다. 아내가 페이스북에 여행사진을 올렸더니 아는 분이 이곳에 가서 이름대고 차 한 잔 하고 가라 하셔서 들렀다. 찻집이라고 생각하고 왔더니 녹차를 재배하는 다원이었다. 서울에서 귀농한 노부부가 유기농으로 녹차를 재배하고 계셨다. 청주에서 왔노라니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실내에서는 차를 말리는 기계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 이런 과정을 거쳐 녹차가 만들어지는 구나 새삼 신기한 구경을 다한다. 주인장께서 직접 만드신 발효차를 마시며 1시간가량 이야기를 들었다. 녹차가 건강에도 참 좋은데 커피에 밀려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마신 발효차가 엄청 맛있기도 해서 돌아가서 먹으려고 1세트를 구입했다.

 

 

 

 

이로써 해남여행도 끝이 났다. 아쉬움이라면 시간이 짧아 보길도를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 기회는 분명 또 있을 것이다. 바다와 산사, 윤선도 유적지와 녹차와의 만남으로 오래도록 해남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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