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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Cross (적십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봉사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봉사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 과거에 봉사원들과 함께 <자랑스러운 적십자봉사회 시상식>에 다녀온 일을 떠올리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어, 올해가 2019년이니 부녀봉사회 70주년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7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연이라기엔 뭔가 운명과도 같은 이 상황은 뭐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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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봉사원들과 함께 <자랑스러운 적십자봉사회 시상식>에 다녀온 일을 떠올리며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었다. '어, 올해가 2019년이니 부녀봉사회 70주년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불과 며칠 후 7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을 때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우연이라기엔 뭔가 운명과도 같은 이 상황은 뭐지 하면서.

드디어 지난 9월 25일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 70주년 기념식이 충북적십자사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 봉사원 및 축하객 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의미있게 치뤄졌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시 '곡강'에서 '인생칠십 고래희(인생칠십 고래희)', 예로부터 일흔 살을 사는 것은 드물다고 했다. 어찌보면 봉사회도 사람을 닮았다. 인간의 생노병사처럼 봉사회도 태어나고 왕성하다가 활동이 잦아들면 자연스레 휴면에 들어간다. 봉사회가 꾸준하게 70년을 이어오는 동안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그 모진 시간을 다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70주년의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70년 동안 총 142명의 봉사원이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를 거쳐갔다고 한다. 한분 한분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오늘은 그중 두 분의 봉사원을 소개하려 한다. 현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 이선자 회장, 최고령 배정자 봉사원이 그들이다.


1. 이선자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장

 

그녀는 현 부녀봉사회장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봉사회장을 맡았던 적이 있다. 돌아가면서 임원을 맡으면 좋겠지만, 봉사원들이 임원 맡기를 꺼린다. 그래서 이선자 회장은 다시 봉사원들이 추천한 경우다. 다 그릇이란 게 있나보다. 이선자 회장은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신다. 몇 년만에 봤는데도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셨다. 기분이 좋다.

- 준비과정에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이번 기념식 책자에 봉사회에서 활동하신 모든 분들의 이름을 넣었어요. 기록이 남아야 하니깐요. 기념사도 받아서 넣었구요. 작업을 하다보니 허전함이 있더라구요. 내가 남기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물질로 남기는 것도 아니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게 있어 시를 한 수 적어서 마지막에 넣었어요. 그리고 화장대를 정리하다보니 과거에 상으로 받은 배지와 팬던트, 94년도에 받은 시간표창도 있어서 함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책자에 넣었어요."

-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있으세요?

"중점적으로 많이 한 게 매달 밥을 해서 소년원에 갔어요. 소년원생 20명~25명에게 밥을 해서 나르는데, 매달 메뉴를 바꿔서 갔어요. 거기 애들이 촉법소년인데, 대개 경미한 애들이에요. 결손가정 애들이 많았죠. 눈동자는 너무 아름다운데 불쌍했어요. 어느날 한 학생이 나에게 편지를 썼어요. 우리 엄마보다 더 좋으신 어머니 늘 이렇게 오셔서 덕분에 잘 먹어서 감사하다구요. 시설에서 나오는 음식은 반찬이 부실합니다 하면서요. 슬그머니 나한테 쪽지를 줬는데, 나중에 그 편지를 보는데 눈물이 막 났어요."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대외적으로 볼때 적십자는 재난기구잖아요. 지속적으로 적십자 재난기구가 잘 유지가 되야 하겠구나 늘 마음으로 생각해요. 또 앞으로 우리는 늙어가고 있지만 젊은 세대들이 혼연일체되어 적십자 활동을 잘 한다면 국가적으로 도움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한 미리미리 교육해서 재난발생도 최소화되면 좋겠어요"

 


2. 배정자 청주부녀적십자봉사회 봉사원 (78세)

 

"배부님. 배부님"

예전에 다른 봉사원들이 그녀를 부를때 대부님이라고 하는 줄 알았다. 가는 곳마다 계실 정도로 워낙 봉사활동을 왕성하게 하시니 사람들이 봉사의 대부라고 부르는가보다 생각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배정자 봉사원님이 흥덕지구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계셨는데 "배정자 부회장님"을 줄여서 "배부님"이라고 부른 걸 내가 "대부님"으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꽤나 웃었다. 이 분에 대한 첫 기억이다.

- 언제 적십자에 오셨고, 어떤 활동을 하셨어요?

"봉사는 39살부터 했는데, 적십자는 1998년에 청주부녀봉사회 이영자씨가 소개해서 처음 들어왔어요. 그 분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없어요. 저는 입회부터 이제까지 도복지관에 급식봉사를 안 거르고 다니고 있어요. 중앙공원 지하급식소도 가고, 현양원도 가고. 오늘도 오전에 현양원가서 봉사하다가 왔어요."

- 기억에 남는 봉사활동이 있으세요?

"우리 동네에 폐지 주으시는 꼬부라진 할머니가 계세요. 할머니에게 아픈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분이 너무 안쓰럽더라구요. 폐지 주워도 돈을 얼마 못 받는데, 그걸 주워 먹고 산다는 건 너무 어려운 거잖아요. 항상 그분을 보면서 내가 많이는 못 보태도 봉사하면서 그분이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 보람있더라구요."

- 어려운 일도 있으셨어요?

"많죠. 불우이웃돕기를 해도 내가 동네에서 도와주는 사람 외에도 그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어른들이 많아요. 다 돕지 못하니 그게 너무 가슴아프죠."

- 집에서 잘 이해해 주세요?

"젊었을 때에는 남편의 반대가 심했는데, 지금은 봉사갈때 올때 남편이 차로 태워다 주고요. 같이 봉사다니기도 해요."

- 회장님에게 봉사는 어떤 건가요?

"아무 부담없이 내 일 해 가면서 열심히 남을 도와주는 거요."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열심히 봉사해 왔다고 생각해요. 후배들과 같이 힘을 합쳐서 봉사활동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