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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세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길 바라며


 결혼전 우리 네 가족이 모두 이산가족이었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에 계셨고, 동생은 대학 때문에 또 다른 지역에 있었고, 나는 군대에 가 있었고, 어머니는 혼자 집을 지키셨다. 뿔뿔히 흩어져 지내다보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그래도 휴가를 나오거나 때론 가족이 면회를 와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가족이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업무를 하다보면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만나고 가족이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만난다. 자식이 없고 가족이 없어 혼자 사는 사람, 소위 독거노인이다. 돌봐야 할 대상이다. 최근에는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돌보기도 하지만 고독사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봉사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 사할린동포, 다문화가정은 모두 고향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보고 싶은 가족이 있지만 보기가 힘들다. 하지만 돈을 벌어 가거나 가족을 불러온다면 만날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의 불길마저도 사그라드는 분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6. 25 전쟁이 발발한 지도 어느덧 60년 세월이 지났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이제 70대에서 90대까지 지긋한 나이가 되었다. 분단으로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생사여부도 모른 채 지나온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철책이 둘러쳐져 있어도 혈육의 정을 막지는 못한다. 지난 1988년부터 이산가족 신청을 한 사람이 12만 여명인데 이 중 5만 여명이 돌아가시고 7만여명이 살아 계신다.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다면 한번에 남쪽 100명, 북쪽 100명 등 200명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매월 1번씩 12번을 해도 2400명에게 기회가 주어지는데, 모든 신청자가 한번씩 기회가 얻으려면 30년이 더 걸린다. 그런데 지난 몇년간 이산가족 상봉은 아주 차단됐다.

 이산가족 상봉 때만 되면 적십자 사무실로 울먹이며 전화를 거는 할머니가 계셨다. 할아버지도 실향민이셨는데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의 염원이던 가족상봉을 꼭 본인이 살아 있을 때 해 보고 싶다고 울며 전화하셨다. 그저 생사여부만이라도 알고 싶다는 게 그분들이 그토록 원하는 큰 꿈.

 만난다고 그리움이 다 가시지는 않을텐데..한시라도 빨리 면회소가 설치되어 군대 면회하듯이 주말이면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음식도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세월은 말없이 가고 있다. 누구도 이런 비극에 책임지지 않고서..

 설 명절을 앞두고 고령 이산가족 가족을 방문해 위로도 해 드리고 진행상황도 설명해 드렸다. 하지만 찾아가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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