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인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재난 현장이 있다. 아직 재난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현장에 가 보기를 권한다. 현장 속에 한걸음 더 가까이 들어가 보면 몸은 힘들어도 느끼는 바가 많다. 돌이켜보면 나는 운이 참 좋은 편이다. 입사 이후 재난현장을 가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갔을 때 충북지사 선발대로 경남 남해군 창선면으로 복구지원을 처음 나갔다.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가 충북 지역을 휩쓸고 갔을 때에는 둑이 무너져 물에 잠긴 진천 덕산에서 일주일 넘게 직원들과 함께 머무르며 구호에 나섰던 적도 있다. 2011년 7월 경기 북부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마을이 어른 키보다 높게 물에 잠겼다 빠졌을 때 봉사원 40여명과 함께 동두천 보산동으로 복구활동에 나섰던 경험도 잊을 수 없다.
여러 재난 현장 가운데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2004년 3월 폭설피해 현장이다. 3월에 내리는 눈은 결코 낭만이 아니었다. 3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내린 폭설은 1904년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3월 중 내린 하루 적설량 중 최고를 기록했다. 무려 40cm가 넘는 눈이 내렸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물기를 머금어 무겁다. 게다가 하늘마저 무심하신 지 35시간 이상 내린 눈발로 비닐하우스는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상상할 수 없던 폭설은 고속도로 위 운전자들을 고립시켜 버렸다. 중부고속도로 청주 주변 차들은 폭설 때문에 나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암담한 상황에 놓였다. 운전자들은 난생 처음 겪는 폭설로 인해 차 안에서 추위에 떨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신참직원이었던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이 상황에 무척이나 놀랐다. 모든 직원들과 몇몇 봉사원들은 함께 추이를 지켜보며 지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컴컴한 어둠이 내릴 무렵, 서청주IC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2.5톤 급식차량에 컵라면, 빵, 생수 등을 가득 싣고 향했다. 막상 고속도로 IC 입구에 차가 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막막함도 밀려 왔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도로에는 이미 무릎 높이만큼 눈이 덮여 있었다. 차를 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상황도 못 되었다. 급하게라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도로공사 사무실로 달려가 협조를 요청하고, 리어카 한대를 빌려왔다. 리어카에 취사도구와 가스통, 챙겨간 구호품을 일단 가득 싣고서 막내인 내가 앞에서 끌고 최인석 봉사원(전 충북지사협의회장)이 뒤에서 밀며 눈 덮인 오르막길을 올랐다. 무거운 뒷짐에 눈길을 헤치고 올라가려니 평소보다 힘이 몇 배나 더 들었다. 가까스로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추위에도 불구하고 옷 안 가득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자리를 잡은 후 리어카 위 물건들을 하나씩 도로로 내리고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다른 직원들과 봉사원들도 뒤따라 집결했다.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어서 차량 운전자들은 차를 버리고 쉬러 갈 수도 없는 처지였고, 추위에 히터를 계속 돌리다보니 그나마 남은 기름마저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컵라면과 빵이라도 돌려서 운전자의 허기를 채워주고 마음을 안심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운전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웬일인지 차량 운전자들은 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우리 적십자를 돈을 받고 음식을 팔러 나온 장사꾼으로 여긴 것이다. 아차차! 직원들과 봉사원들은 컵라면과 빵을 양손에 들고 일일이 차량 운전석을 두드리며 친절하게 말씀드렸다. “안녕하세요. 힘드시죠? 적십자에서 나왔습니다. 이 물품은 선생님이 내신 적십자회비로 마련한 겁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안내하자 그제야 운전자들은 감사인사와 함께 우리가 내민 구호의 손길을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저녁 무렵부터 시작된 이날의 구호활동은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와 오창IC 일대를 번갈아가며 진행되었고,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다소 정리가 되어 철수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운전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것 외에도 인근 지역 양계장과 비닐하우스 농가 등을 중심으로 복구활동은 퍼져 나갔다. 3월에 쏟아진 폭설 탓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재난 구호를 새내기 적십자인인 내가 해냈다는 사실은 지금도 적십자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사명감을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재난 현장에 가보면 적십자가 존재하는 이유가 보인다. 적십자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빨리 달려가고 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고 있는 활동이 얼마나 가치 있으며, 숭고한 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언제 어디서든 재난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적십자가 가장 앞장서 구호에 나설 것이다. 오늘 따라 내 가슴을 뛰게 한 그 말이 더더욱 떠오른다. 그래. 한번 외쳐보자. “가자, 아픔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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