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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논문의 대중화를 위하여'를 읽고.

[강준만 칼럼] ‘논문의 대중화’를 위하여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품질이 우수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쉽고 재미있고 유익한 논문들도 많다. 나는 ‘논문의 대중화’가 논문 생산자들에게 줄 수 있는 ‘주제 설정’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예컨대, 어떤 주제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직 다루지 않았다거나 이렇다 할 참고 문헌이 없기 때문에 논문으로 쓸 수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이나 관행에 큰 변화가 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최근 출간한 어떤 책에서 ‘논문 읽기’를 제안하면서 책의 각 장 말미에 주제와 관련된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목록을 실었다.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논문이 책보다 접근성이 좋고,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고 유익한 논문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문화일보> 엄주엽 기자는 ‘전문지식 활용하고 싶은데… 일반인은 볼 수 없는 학술논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의미 있는 제안이지만 누구나 논문을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일반인의 학술논문 접근이 어려운 현실과 그걸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너무도 유익하고 반가운 기사였다. 사실 나는 학교 도서관을 통해 무료로 논문에 접근할 수 있는 대학생을 염두에 두고 제안을 했지만, 그 누구건 논문을 신문 읽듯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논문의 대중화’를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과 고학력 인구 비중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 ‘논문의 대중화’는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며칠 전 <한겨레>에 또 하나의 반가운 기사가 실렸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이 쓴 ‘지식생산의 민주화’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강 학장은 정년퇴직 후 몸담고 있던 대학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어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수많은 비정규직이나 독립 연구자들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며, 지식생산 과정의 민주화를 역설했다.

엄 기자와 강 학장의 뜻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논문의 대중화’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식정보사회’라는 슬로건이 괜한 말이 아니라면, 국가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대학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젠 한국의 교수들도 대학평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논문을 쓰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논문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 풍토에 대한 비판은 타당하지만, 여기선 논외로 하자. 그 어떤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한다 하더라도 교수들의 논문 쓰기는 영원히 계속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매년 발표되는 교수들의 논문 수는 7만 편이 넘는다. 천박한 발상일망정, 이걸 비용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전체 교수 인건비의 절반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 논문들이 널리 활용된다면 이런 천박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엄 기자가 잘 지적했듯이, 대다수 논문은 관련 연구자 10여 명 정도만 읽고 사실상 사장된다는 말을 학계에선 공공연히 하고 있다.

논문이 그 정도로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논문을 쓰는 주요 목적이 업적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논문 주제 외엔 관심을 돌릴 겨를이 없어서 빚어지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겨난다. ‘사회와의 소통’이라는 가치는 외면되고 논문집에 실릴 가능성이 높은 ‘논문 적합성’ 위주의 논문이 양산된다.

그럼에도 품질이 우수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쉽고 재미있고 유익한 논문들도 많다. 나는 ‘논문의 대중화’가 논문 생산자들에게 줄 수 있는 ‘주제 설정’ 효과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예컨대, 어떤 주제에 대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아직 다루지 않았다거나 이렇다 할 참고 문헌이 없기 때문에 논문으로 쓸 수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이나 관행에 큰 변화가 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대중과 논문 생산자 사이에 언론이 있는데, 나는 우리 언론이 ‘논문의 저널리즘화’ 작업에 무관심한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론이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스스로 제시하면서도 논문을 멀리하는 모순을 어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자들은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논문을 썼다거나 어떤 우연하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에만 논문을 기사화할 뿐 상시적으로 새로운 논문을 검색해서 기사화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늘 절감하겠지만,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번역서의 저자들 중엔 기자들이 많은 반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 저자 목록에 오르는 기자들은 찾기 어려운 것도 바로 그런 언론 관행과 무관치 않다. 언론이 이제라도 논문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언론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식생산의 민주화’에 앞장설 것인바, 우선 언론의 변화를 강하게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1101.html#csidxdfd93eff0f28b7b9581efb8bf2f6f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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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1. 어떤 것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적은 글. 그 쳬계는 대개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단계이다.

2. 어떤 문제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결과를 체계적으로 적은 글

 

아침 한겨레신문에서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었다. '논문의 대중화'에 공감한다. 쉽고 재밌으면서 유익한 논문이 필요하다. 교수들은 글을 어렵게 쓰고, 저널리스트는 '논문의 저널리스트화'에 소홀한 면이 있다. 둘의 상호작용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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