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는 술과 거리를 두는 게 맞다. 그런데 그제께부터 청담집 모둠전이 먹고 싶었다. 퇴근직전 아내에게 전화해 물어보고 먹기로 했다. 아내가 청담집에 주문하고 나는 포장을 찾으러 갔다. 계산과 배달은 나의 몫. 아파트 슈퍼에서 막거리 작은 병 하나 사서 우리 세 가족 식탁에 마주 앉아 즐겁게 먹었다. 아내에게 막걸리 두 잔 주고, 나머지는 내가 모두 마셨다. 자고 일어났는데 몸은 비실비실하다. 술 먹은 여파다.
어느새 40대 중반. 20대에는 한달 내내 술을 먹기도 했는데, 30대에는 술을 마시고 다음날 지친 육신으로 일하다가도 퇴근 무렵이면 다시 살아나 술을 마시곤 하였는데, 40대에는 한 번의 술자리 후에는 며칠간의 휴지기를 꼭 가져야 할 상황이 되었다. 술 먹는 강도도 빈도도 줄었건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술이 좋고, 술 이야기가 좋다.
<아무 날도 아닌 날 - 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최고운 지음)>을 읽었다. 서민교수의 <서민적글쓰기>에 언급된 이 책에 대해 관심이 갔다. 한정된 작가의 틀 속에서 글을 읽다가 검증된 작가가 추천하고 언급하는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너무 좋다.
에미넴이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8마일>이 있었다. 디트로이트 8마일 313클럽에서의 마지막 힙합배틀에서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까발리는 상대에 앞서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먼저 드러냄으로서 상대가 아무것도 손쓸 수 없게끔 만들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뭐랄까. 이런 솔직, 대담함을 본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똥 이야기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첫 글 <두물머리에서>에서의 응가 이야기부터 예사롭지 않은 전개를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를 이루는 이야기는 결국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남과 녀, 일상의 언어, 몸의 언어, 술이라는 매개이자 촉매. 나는 '관계의 노젓기'라는 메시지가 머리에 쏙 박혔다. 잘 못하기도 하고, 정말 무정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시원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나에게는 이런 욕망이, 솔직함이 부러울 따름이다. 삶에서도, 글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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