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나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기타를 사기 위해 집 앞 주유소에서 알바를 했다. 발가락이 얼어붙을 것 같은, 한겨울 살을 에는 매서운 추위도 참아가며 일했다. 자주 가던 음반가게에서 기타를 샀고, 그 건물 2층에 있는 기타학원에 등록했다. 한 2주나 다녔을까. 청주에 있는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학 때 모여서 학습해야 하니 얼른 내려오라고. 선배말을 금언처럼 알고 따르던 시기라 두말없이 청주로 갔다. 학원비가 아깝긴 했다. 청주에 가니 모든 게 흐지부지되었다. 나의 열정도 사그라졌다. 기타는 내 방 한쪽 귀퉁이에 놓인 장식품이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군대를 다녀오고 난 뒤 친구와 같이 자취를 했다. 자취방을 들락거리던 사람들이 내 기타를 쳐 보더니 소리가 좋다고 했다. 그런가보다 했다. 자취방을 며칠 비웠다. 돌아와보니 기타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여럿이서 자취방에서 술을 먹었고, 자리한 사람 중 한 명이 격한 감정에 손에 잡히던 내 기타를 박살낸 것이다. 졸지에 나는 기타와 이별했다. 내 기타인생 1막은 뭘 제대로 해 본 것도 없으면서 끝이 났다.
올초부터 기타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못다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세시봉의 기타열풍 때문이었일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취미를 누릴만큼 저녁이 있는 삶도 없다. 더늦기 전에 운동을 시작하라는 주변의 강권도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더 늦으면 악기를 배울 의욕마저 내지 않을 것 같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른 걸 미루고 이 가을 기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처음부터다. 다른 점은 인터넷으로 기타를 샀다는 것.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참고했다. 악기마저 인터넷으로 산다는 게 신기하기면서도 편리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기타를 장만했다. 데임 릴리즈 70, 색깔은 무광. 독학할 수 있도록 DVD도 들어있어 좋다. 서두를 욕심은 없다. 짬나면 조금씩 DVD보면서 띵까띵까할거다. 아내에게는 10년 후에 세레나데를 한 곡 연주해 주겠다고 했다. 방 한 귀퉁이에 다시 기타가 놓였다. 기타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방이 꽉 차 보인다. 기분좋다. 이번은 왠지 이전과는 다를 것 같다. 내 기타인생 2막, 이렇게 열어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