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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세상

나에게 게임을 권하는 여자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때는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여타 아이들처럼 오락실이나 문구점 앞 오락기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순위표 제일 위에 내 기록을 올리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바쳤다. 게임머니를 위해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몰래 슬쩍하다 동네 파출소 앞에까지 끌려갔었고, 다시는 안 그렇겠다고 아버지께 울며 용서를 빌었던 기억도 있다. 중고등학교 때도 방과 후에 오락실을 갔었다.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다녀온 직후에는 한참 PC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유형의 게임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껴서 친구와 밤을 간간이 샜다. 특히 온라인 축구게임을 즐겨했다. 지역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했다. 그러나 20대 중반을 기점으로 게임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시들어갔고 지금은 아예 생각도 없다.

  그런데 자꾸 나보고 게임을 하자는 사람이 생겼다.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깔았더니 게임 메시지가 날아오는 것이었다. 상대는 나에게 애니팡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초대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초대한 사람이 특별했다. 다름 아닌 내가 아는 캄보디아 결혼이민자 트씨(가명)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에 실시한 해외봉사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였다. 경제적으로 다들 넉넉해지면서 봉사자들도 해외 한 번 안 다녀온 사람이 없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여행을 가미한 볼런투어 프로그램으로 캄보디아 해외봉사를 기획했다. 물이 귀한 현지에 가서 우물도 기증하고, 빈민가 아이를 위한 무료급식도 하고, 준비해간 학용품도 전달하고, 캄보디아 적십자가 운영하는 아동센터를 방문하는 일정도 짰다. 그리고 충북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이 모국을 방문하는 프로그램도 포함시켰다. 캄보디아인 트씨는 그렇게 선발된 네 가족 중 일원이었다.

  트씨는 한국으로 시집 와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남편은 대학까지 졸업했고, 부인에 대한 이해심도 많았다. 트씨도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에 온 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꾸준히 다니다보니 다른 결혼이민자보다 한국말에 능숙했다. 한국생활의 경험을 글로 써 정부표창을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46일 간의 캄보디아 해외봉사는 성황리에 끝이 났다. 봉사자들은 열악한 현지인의 삶을 보면서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고, 결혼이민자들은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생활의 외로움을 덜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글을 잘 쓰는 트씨로부터 캄보디아 방문수기를 받아서 책에다 실었다.

  그리고 한참을 잊고 지냈다. 1년이 지났을 때, 트씨가 나에게 페이스북에서 친구신청을 했다. 친구를 맺으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페이스북에다 나에게는 한국말을, 캄보디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일상생활을 기록할 때는 영어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캄보디아어 자판이 없기 때문에 서로 알 수 있는 언어로 영어를 쓰는 것 같았다. 트씨의 페이스북을 읽다보니 겉으로 내가 느꼈던 것과 실제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씨는 일상에서 그립다라든지 외롭다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었다.

지난 추석 때, 트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명절이 되어 친정에 가는 한국여성을 보니 고향에 갈 수 없는 자신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안타까웠지만 당장 어떻게 도움을 줄 수도 없었고,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그녀에게서 애니팡메시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마음의 헛헛함을 게임으로 채우는 게 아닌지 생각했다.

  업무 상 나는 다문화가정의 사연을 종종 접한다. 적십자 봉사원이 결혼이민자 여성과 그 가족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일대일 결연봉사를 하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인 트씨는 그래도 안정적인 축에 속한다. 내가 알게 된 한 다문화가정은 남편과 부인의 나이차가 무려 26살이나 난다. 이런 이야기를 봉사원 교육에서 하면 탄식부터 나온다. 지난 달 나는 다문화의 이해를 주제로 한 특강을 들었다. 강사님은 대전에서 활동하는 분이셨는데, 자기는 40살 차이가 나는 부부를 봤다고 했다. 결혼이민자가 20대인데, 남편의 아들이 40이란다. 거기에 초혼도 아니고 재혼도 아니고 삼혼 째란다. 경악했다. 남편의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남편의 경제적 능력 부족은 대부분의 가정이 안고 있는 문제다. 결혼이민자가 본인도 적응하기 전에 덜컥 임신해 아이부터 낳다보니, 아이들의 학습능력도 떨어진다. 엄마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도 학교에서 내 주는 숙제를 해 주기 어렵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학교숙제를 도와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겨져 또 다른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남편과 나이차이가 평균 10살 이상이 나다보니 남편의 사망과 재혼문제도 생겨난다. 내가 본 한 가정은 한국인 남편과 부인이 아이를 낳고 살다가 남편이 사망하고 난 뒤 부인이 재혼을 했는데, 이 남자는 또 다른 국적의 외국인이다. 친가와 외가의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다.

  나도 내년부터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봉사활동을 더 고민해야 한다. 항상 시대의 문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는 중요한 봉사거리이다. 프랑스는 일자리를 위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인 뒤 40년이 지나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한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다문화가정이 이제 20여년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도래할 20년 내에 폭동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적십자가 그리고 내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오늘도 트씨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애니팡>, <퍼플 주주>, <캔디팡>, <카트라이더>도 거절했더니, 이번엔 <드래곤 플라이트>. 차라리 게임이 아닌 메시지를 나에게 보냈다면 답장이라도 하였을 텐데. 생각해 보니 나도 늘 그녀에게서 메시지만 받고 있었다. 이번엔 반대로 한번 해 볼까? 올해가 가기 전에 내가 먼저 메시지를 한번 보내봐야겠다. 우리는 친구이니깐.

 

<이 원고는 인권연대 숨 소식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