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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둔주봉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제부터 어딘가 가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집과 가까운 곳을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을 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가 옥천에 있는 둔주봉엘 가자고 제안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 모양으로 보인다는 곳이었다. 빠른 길찾기를 해 보니 1시간 거리란다. 시간도 딱 좋고, 볼거리도 새로와 신이 났다.

인터넷이 안내해주는 길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보은군 회인면으로 해서 옥천으로 넘어가는 길로 소개가 되어 있었다. 우리 차는 현재 네비게이션이 없다. 아내가 아이폰을 쓰지만 배터리도 떨어진 상태. 언제부터 우리가 네비게이션을 썼다구. 우린 길을 나섰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거다. 예전에 우리는 네비게이션이 없었다. 방향만 알면 쫓아서 갔고, 길을 헤메면 물어서 갔다. 인터넷에서 알려주는 길을 종이에 받아적어 찾아갔지만 결국 길을 조금 돌아서 도착했다.

기계는 편리하지만 단절을 양산한다. 이처럼 모르는 상태로 길을 나서게 되면 사람과 소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대화가 된다. 하지만 만일 내가 애초에 네비게이션이 있었다면, 나는 곧장 목적지에 누구 도움 없이도 도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대화 이런 것들은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옥천군 안남면사무소에 차를 댔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자세한 안내판이 안 보였다. 지나가는 두 소녀에게 둔주봉을 물었더니 요앞 오토바이 가게 옆을 지나면 된다고 한다. 마침 이 아이들도 그 쪽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모퉁이를 돌 때 안내판이 보였다. 아이들 뒤에서 걸으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좀 뒤쳐져 걸었는데, 한 아이가 이제 갈림길에 들어섰는지 손가락으로 좌측으로 가라고 여러번 손짓을 한다. 고마운 녀석들. 길을 따라 경사진 길을 오르다보니 이번엔 약초상이 운영하는 집을 지나게 되었다. 마당 입구에서 고사를 지내던 중이었나본데 산에 가는 데 맛보라며 흰 봉지에 담은 시루떡을 건넸다. 떡순이 우리 마눌 어찌나 좋아라 하던지.


시멘트 언덕길 끝자락에 오르니 좌측으로 차들 몇 대가 줄지어 서 있다. 아마도 산에 올라간 사람들 차 같았다. 여기서부터 1.6km. 결혼전이랑 초기만해도 나랑 아내는 매주 돌아다녔다. 특히 산을 많이 갔었다. 그때는 산도 잘 탔는데, 한동안 산을 떠났더니 둘다 체력이 바닥나 힘이 들었다.

30분 가량 오르니 정자가 나온다. 산불 감시원 아저씨가 정자 위에서 우리를 살펴본다. 감탄의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보고 싶어했던 그 풍경. 물길이 휘돌아 나가며 산새와 어우러져 한반도 모양을 이룬 광경. 이럴수가 있나! 눈이 즐겁다. 날씨가 썩 맑지는 않아서 희뿌였게 보였지만 윤곽만 보더라도 기이함이 느껴졌다.


어차피 내려올 길. 내려오며 다시 감동을 느끼기로 하고 800미터 남은 고지를 향해 전진했다. 가파른 길이 계속 이어졌다. 줄을 붙잡고 올라가는 구간도 나왔다. 그리하여 도착한 둔주봉 정상. 이곳 또한 시야가 탁 트여 있어 매우 좋았다.

모처럼 즐거운 산행을 했다. 생각보다 날도 푹해서 흠뻑 땀을 흘렸더니 기분이 상쾌했다. 둔주봉은 산행시간도 적당하고, 볼거리도 충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입구에서부터 안내가 이루어진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탄하는 대표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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