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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거북이

살아야 하는 이유

 

 

 마음이 힘든 하루였다. 도로와 야산을 덮은 눈이 제 녹기도 전에 다시금 함박눈은 도시를 공습했다. 눈을 치우는 움직임마저도 무력화시킬 정도로 오늘 내린 눈은 무서웠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도로에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갔지만 나는 그 눈을 뚫고 가야할 곳이 있었다. 꼭 봐야할 사람이 있었다.

 

 며칠 전 봉사원 한 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매년 저금통에 돈을 모아 기부하는 이쁜 남매를 키우고 본인도 열심으로 봉사하시던 분인데, 교통사고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루에 면회는 두번.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데 세찬 눈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30분간 주어지는 면회시간에 늦어버리면 어떡하나 마음을 조리며 운전을 했다. 다행히 조금의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생전 처음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사람들이 침대위에 있었다. 환자와 대면한 순간, 내 마음은 비통했다. 눈물이 났다. 예고없이 찾아온 단 하나의 사고가 한 가정과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구나. 다행히 어제보다는 오늘 상태가 호전됐다고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회복될 것이다. 그렇게 의식을 회복하고, 건강도 회복하길 간절한 바람으로 염원한다.

 

 좋은 일 많이 하고 착하게 산 사람에게도 이처럼 쓰나미처럼 찾아오는 불운의 그림자가 있다. 내 주변의 안타까운 일이 그저 가족만의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특히 강상중 교수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읽고보니 그렇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벌어진 3. 11 대지진. 20여만동의 주택이 파괴되고 32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1만여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생겼다. 

 

 그들 대부분도 그저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이었을 것이다. 선량하게 살면서 자신의 능력으로 가족을 꾸리며 평범한 일상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던 사람들 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죽거나, 집을 잃거나, 가족을 잃거나, 직장을 잃었다. 그들이 나빠서, 그들이 잘못이 많아서 재앙이 생긴 게 아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불운이 그들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이 사건은 내 삶에도 많은 고민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정녕 행복한가?

 우리에게 행복과 불행의 경계는 언제 다가올까? 궁금하고 또 묻게 된다.

 

 군데군데에서 저자의 성찰과 울림을 발견하지만 나는 특히 이 대목이 좋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괜찮다는 것.

 지금이 괴로워 견딜 수 없어도, 시시한 인생이라고 생각되어도,

 마침내 인생이 끝나는 1초 전까지 좋은 인생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특별히 창조적인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는 것.

 그러니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찾을 필요 같은 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면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는

 저절로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p191

 

 누구는 행복한 노후를 꿈꾸며 차곡차곡 미래를 준비하겠지만

 당장 내일 내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게 세상이다.

 

 저자가 묻는다. 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

 나는 답한다. 모르겠다..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충실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