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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이와 함께하는 세상

아이를 데리러 가다

나는 직장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던 사람이었다. 일이 많아서, 일이 좋아서 늦게까지 일하곤 했었다. 서울과 청주를 오갈 때도 서울에서 9시 30분 기차를 타고 청주에 도착해 다음날 새벽 6시대 기차를 타고 올라올 정도로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철저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6시 땡하고 퇴근을 했다. 유치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서다. 아이 엄마가 옥천에서 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하필 휴가를 내기 참 애매한 상황이라 어쩔수 없이 6시가 되지마자 사무실을 벗어났다. 청주도 저녁시간 차가 상당히 막힌다. 큰 도로를 달려가면 6시 30분에 도착할 수 없다. 회사 뒷길을 돌아 농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가 다시 유턴하여 굴다리 아래를 지나 큰 도로까지 가는 길이 최선이다.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갈 방법을 찾게 된다. 오늘따라 길가에 차를 정차하고 있어 도로를 혼잡하게 만드는 차량이 있었다. 유치원에 가까스로 도착하니 6시 30분. 벨을 누르자 "00야. 아빠 오셨네."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모든 아이가 다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딸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럴 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전에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짓곤 했는데(엄마가 안 와서), 덤덤하게 나오는 걸 보면 컸구나 싶다.

내 어릴 적 부모님 두 분 모두 일하셨다. 그래서 할머니의 돌봄이 많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나는 커서 결혼하면 와이프는 아이 키우고 나는 일해서 가족 먹여 살리겠다고 생각했다. 철부지 같은 생각.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우리 부부 입장에서는 서로 도와가면서 하는 것인데, 아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가도 먹을 게 없어, 뭐 먹고 싶냐고 물으니 "돈가스"란다. 녀석. 아빠 입맛을 닮아서 돈가스를 좋아한다. 늘 가던 우동집이 오늘 쉬는 날이라 문을 닫아서 가경동 공원당까지 좀 멀리 갔다. 커다란 식당에 달랑 우리 둘이었다. 치즈 돈가스 하나랑 등심 돈가스 하나를 시켜서 아이가 절반 먹고 아빠는 아까워 하나 반을 다 먹었다. 밤 11시까지 배부르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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