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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이와 함께하는 세상

네 안에 '흥' 있다

 

 

네 안에 '흥' 있다

우리 부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일단 휴대폰 유튜브앱부터 켜고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드라마 OST를 들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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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차를 타고 이동할 때면 일단 휴대폰 유튜브앱부터 켜고 블루투스를 연결한다. 주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드라마 OST를 들으면서 간다.

근래에는 <스토브리그>, <이태원 클라쓰>, <동백꽃 필 무렵>,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나나 와이프가 좋아했던 드라마 OST를 번갈아가며 들었다. 최근에는 와이프가 비긴 어게인 '크러쉬'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노래를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다.

유전 플러스 환경적인 영향 탓이겠지만, 올해 6살이 된 딸도 우리 부부처럼 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본인이 선곡도 한다. 노래 제목을 잘 몰라서 한 소절을 불러주며 "아빠 이 노래 틀어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을 늘상 보다 보니 엄마 아빠에게는 없는 부분이 아이에게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조금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몸이 먼저 들썩이는지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흥'?

그럼 우리 딸이 ‘흥부자?’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청주 청남대에서 열리는 재즈토닉페스티벌을 2년 연속 갔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 갔을 때 아이는 4살이었다. 첫 해에는 공연이 재미없었는지 집에 가자고 하도 보채는 바람에 얼마 못 있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작년에는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비가 중간에 쏟아지는 궂은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우비를 입은 채 4시간 동안 공연 보며 놀았다. 그때 아이가 제자리에 서서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던 걸 떠올렸다. 누가 보면 쑥스러워 바로 멈추긴 했지만.

그런 딸이 이번 여름휴가 때 무대를 완전 뒤집어 놓으셨다. 몇 주전 여름휴가차 처갓집 식구들과 00리조트에 갔는데, 이튿날 밤 옥상가든에서 바베큐를 먹으며 공연을 보게 되었다. 가수가 앞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우리들은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렇게 쑥스러워하던 녀석이 그날은 중앙에 있는 원형 무대에 올라가 노래가 끝날 때까지, 온몸에 땀이 흠뻑 젖은 상태로 내려오지 않고 춤을 췄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쏘냐. 나는 아이의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했다. 내가 보기엔 우리 딸이 그 가수의 무대를 살려줬다. 한 아주머니는 하는 짓이 이뻤는지 우리 딸에게 달려들어 뒤에서 껴앉아 주고 내려갔다. (이제 나 보디가드도 해야 하나)

“형부. 쟤는 누구 닮아 저렇게 흥이 많아요? 엄마 아빠랑은 딴판이네.”

처제가 웃으면서 한 마디 했다. 내 눈에만 '흥'이 보이는 게 아닌가 보다. 그런데 유독 딸아이만 흥이 넘치는 것일까. 다 자란 우리도 어릴 적에는 다 저렇게 흥이 있지 않았을까. 한 때는 내면에 '흥'이 있었지만 살면서 남을 의식하거나 체면 차린다고 열정을 숨기고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아이가 커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기가 끌리는 관심사에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만족할 것 같다. 세상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고, 인생은 스스로 행복하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 뭔가를 하더라도 말이다.

40대에 늦깎이 아빠가 되어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세대가 다른 딸과 함께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흥겨워하는 아이 모습 바라보면서 웃고 지내고 싶다.

과연 아이의 흥은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나는 아이의 흥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아빠의 과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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