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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늑대의 비극
    카테고리 없음 2009. 8. 28. 13:03

    늑대가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날개가 없는 짐승이니 말도 안 되는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옛날 초원의 목축민들은 늑대가 하늘을 난다고 믿었다. <늑대토템>이라는 책(저자 장룽)은 늑대가 실제로 어떻게 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문화혁명 때 몽골 초원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양의 우리에 늑대 한 무리가 침입해 배를 채우고 사라졌다. 우리를 둘러싼 돌담은 어른 키의 두 배도 넘었다. 늑대가 날거나 굴을 파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굴을 판 흔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늑대가 날아서 들어왔다고 믿었다. 미스터리는 바깥쪽 담에서 피묻은 발톱 자국을 찾음으로써 풀 수 있었다. 덩치 큰 늑대가 담을 짚고 서자 다른 늑대들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뛰어들었던 것이다. 발톱에 피가 묻은 것은 먼저 들어와 배를 채운 놈이 나가서 다시 발판이 되어 주었다는 증거다. ‘늑대 사다리’를 만들 정도로 놈들은 영리하고, 남은 식구를 챙길 정도로 의리가 있다.

    수수께끼가 하나 더 남아 있다. 안에 들어왔던 마지막 늑대는 어떻게 혼자서 담을 넘었을까. 담 안쪽 한 구석에 죽은 양들이 차곡차곡 뜀틀처럼 쌓여 있는 것이 그 답이다. 늑대의 지혜는 때로 인간을 뺨친다. 높은 담 위를 나는 늑대의 모습은 목축민들의 가슴속에 비랑(飛狼)의 전설로 자리잡는다.

    하늘을 나는 늑대는 목축민들의 눈에는 전쟁의 신(神)으로 비쳐진다. 늑대는 군사작전을 구사하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대장의 지휘 아래 척후, 유인, 매복, 기습 등의 작전을 조직적으로 수행한다. 늑대 사다리쯤은 일도 아니다. 적이 예상 못할 때 공격하라는 출기불의(出其不意),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기불비(攻其不備) 등의 손자병법은 늑대들의 주특기이다. 십수만에 불과한 칭기즈칸의 몽골 기병이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것은 늑대병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립수목원을 탈출했던 늑대 ‘아리’가 끝내 사살됐다는 소식이다. 생포하려 했지만 워낙 저항이 심했다는 것이다. 늑대는 한 번도 인간에게 길들여진 적이 없다. <늑대토템>은 묻는다. “사자나 호랑이는 조련시켜도 늑대는 결코 길들일 수 없어. 서커스단에서 늑대가 공연하는 거 봤어?” 인간의 총구는 그 야성(野性)을 겨냥한다. 양의 우리는 날아서 넘나들어도 인간의 우리는 넘지 못한 늑대의 비극이다.

    <이 글은 경향신문 8월 28일자 여적 코너에서 김태고나 논설위원이 쓴 글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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