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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희망풍차여, 끝없이 돌아라~~ 희망풍차 출범식 7월 12일(목) 인간의 고통경감과 생명보호를 추진하는 인도주의 운동체인 대한적십자사는 4대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국민참여캠페인 '희망풍차'를 출범했다. 대한적십자사 국민참여캠페인 희망풍차는 결연을 통해 국내 4대 취약계층(아동, 노인, 다문화,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안전망 강화에 기여하기 위해 수요자에 맞춘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봉사원 2명이 1가정과 결연을 맺어 기초생활, 의료복지, 주거복지 교육복지 등 4가지 핵심 프로그램 분야를 지원한다. 대한적십자사는 국내 유일하게 3대 나눔영역(인적나눔, 물적나눔, 생명나눔)을 효율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눔플랫폼으로서의 역할 확대와 위상을 강화하고 효율적인 사업추진.. 더보기
<솔페리노의 회상>을 읽고서 6월이다. 이미 덥다. 그제보다 어제가 더웠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덥다. 실내에서 일해도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고, 더위에 지쳐 몸은 녹신거린다. 여름, 나에겐 참 힘든 계절이다. 그러고보니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6.6)과 한국전쟁일(6.25)이 포함된 달이다. 나라와 순국선열과 전쟁과 평화를 생각한다. 그런데..사람들은 왜 무더운 6월에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공교롭게도 19세기 유럽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자 비슷한 계절 6월에 벌어진 전투가 있다. 바로 1859년6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프랑스-사르드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솔페리노 언덕에서 벌인 다. 30만명 이상의 병력이 서로 대치하고 전선의 길이는 20km에 달했으며, 싸움은 15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더보기
귀스타브 므와니에의 업적과 사회지도층의 역할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실로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앙리 뒤낭이 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창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므와니에는 적십자의 설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864년 8월 22일에 체결된 제네바협약은 현대 국제인도법의 출발점으로 대부분이 그의 펜 끝에서 나왔다. 므와니에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국제적십자(ICRC)의 총재로 재임하면서 위원회의 정책적인 기본틀과 함께 업무의 근간이 되는 기본 지침을 마련했다. 또한 국제법학회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국제형사재판 체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와니에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이름은 곧 잊혀졌다. (귀스타브 므와니에 / 프랑스와 브뉘옹 / 대한적십자사 중에서) 앙리 뒤낭과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와 .. 더보기
앙리뒤낭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앙리 뒤낭보다 더 기구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는 솔페리노 전투(1859년 6월 24일)의 참상을 보고 나서 자신의 목격담을 토대로 을 발표했다. 이 충격적인 경험은 훗날 적십자와 제네바협약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누렸다. 그러는 그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1867년 파산의 대가로 빚더미에 올라앉으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때 황제와 장관들로부터 귀빈대접을 받았던 그는 배고픔에 굶주리고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빈곤에 허덕일지언정 대의명분을 위한 투쟁을 끝까지 포가하지 않았다. 뒤낭은 전쟁포로의 보호, '세계도서관'사업, 여성의 권리, 국제적인 중재와 관련해서 지속적인 활약을 펼쳤다. 몇 년간의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끝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