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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1만시간의 노력

강주헌의 번역 이야기 (1) - 노력하라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번역 길라잡이’라는 이름으로 벌써 18기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수강생들에게 '이 강의를 듣고 나면 번역 실력이 늘까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없는 듯하다.

 

 물론 그들은 그러리라 생각하고 거금을 지불하고 수강 신청을 했을 테니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그들이 질문하지 않는다고 나까지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첫 시간에 나는 번역 전반에 대해 말하면서 번역은 외국어 실력보다 한국어 구사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국어 공부이외에 한국어 공부까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수강생들은 적어도 영어를 6년 이상 공부했고, 국어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일까?


 먼저 외국어부터 말해보자. 영어를 비롯해 어떤 언어이든 해당 언어를 번역해보겠다는 사람치고 그 언어의 문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번역에 필요한 문법이 따로 있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물론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내가 문장 구조를 분석하면서 관련된 문법을 설명하면 학생들은 그런 얘기를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예컨대 수동구문과 능동구문의 관계는 쉽게 넘어간다.


 그러나 명사구와 절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면, 더 구체적으로 명사구를 경우에 따라 절로 번역해야 할 필요성을 문법적으로 설명하면 금시초문이란 표정을 짓는다. 더구나 문장이 복잡해지면서 관계대명사를 번역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 신기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왜 그럴까? 학교에서 문법의 개념을 애초부터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나 문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성문종합영어가 수준에 따라 여러 권으로 나뉘어지고, 책의 두께도 두툼하지만 그 책들에 쓰인 문법은 엄격히 말해서 문법이 아니다. 그저 관련된 문법에 해당되는 단어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 내용은 사전에서도 전부 찾아진다.


 관계 대명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I know that girl who is beautiful을 번역해보라면 십중팔구 '나는 예쁜 저 소녀를 안다'라고 번역한다. 맞다. 이번에는 I know that girl. She is beautiful.을 번역해보라. 누군가 '나는 저 소녀를 안다. 그녀(그 소녀)는 예쁘다'라고 번역할 것이다. 이번에는 I know that girl. That girl is beautiful.을 번역해보자. 앞 문장과 똑같이 번역할 것이다.


 위의 세 문장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학교 문법에서는 역순으로 배웠다. 동일한 명사를 대명사로 바꾼다. 두 문장에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단어는 관계절을 사용해 하나의 문장을 바꿀 수 있다. 여기까지가 문법이다. 이처럼 짧은 문장은 that girl = who이므로 who가 번역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 긴 두 문장이 관계절을 사용해 결합되면 한국어로 번역하기가 까다로워진다. 이때는 관계 대명사 앞에서 끊어 읽듯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번역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관계사가 번역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 관계 대명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왜 의미를 가진 단어를 번역하지 않는가? 간단한 예여서 실감나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문법에서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어다운 한국어로 번역이 가능하다.


 그럼 한국어 실력은 어떨까?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 영어를 읽고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알겠는데 글로 쓰려면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어로 글을 쓰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똑같은 어려움을 하소연한다. 한국어로 글을 가장 쉽게 쓰는 직업인이 누굴까?


 대부분이 소설가와 같은 작가라고 말하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도 않다. 내 생각에 국어로 글을 가장 쉽게 쓰는 직업인은 신문 기자다.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내용을 떠나 글 자체가 어려워서 못 읽겠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자들마저 번역이 어렵다고 말한다. 실제로 내 강의를 수강한 기자들이 제출한 번역도 난삽하기 그지없었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단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굴레란 영한사전에 쓰인 단어의 뜻을 의미한다. 더 심하게 말하면, 사전을 열심히 찾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contain의 뜻은 사전에 ‘포함하다’로 풀이된다. 하지만 역시 ‘포함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include와는 다른 식의 포함이다. 따라서 contain에서는 뭔가를 눌러 담는 ‘그릇'(container)’이란 단어가 파생되지만 include는 그렇지 못한다. contain이 ‘억누르다’는 뜻으로 발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단어도 기본을 알아야 한다. 단어의 기본은 무엇일까? 국어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찌하는가? 국어사전을 찾아서 그 뜻을 헤아린다.


 그런데 영어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며 어찌하는가? 우리는 거의 기계적으로 영한사전을 뒤적이고 거기에 쓰인 국어 단어에 맞춘다. 그 때문에 sense란 단어가 나오면 ‘감각’이라 번역해야 할지, ‘의미’라고 번역해야 할지 헷갈린다. ‘감각’이란 뜻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의미’라는 뜻으로 발전됐는지 안다면 번역문의 문맥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할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제 중간 결론을 내려보자. 번역을 배우면 번역 실력이 늘까? ‘번역 길라잡이’의 첫 수업에서, 나는 “번역은 수학과 같다.”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 해준 말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는다.


 “수학을 잘 하고 싶으냐?

그럼 매일 수학 문제를 적어도 한 문제씩 풀어라. 부모가 죽어서 초상을 치르는 날에도 수학 문제를 풀어라. 그럼 수학 도사가 될 거다!”


 번역도 똑같다. 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 "맞아, 저렇게 하며 돼!"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내가 풀려면 어렵다. 번역도 똑같다. 번역 강의를 들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어 원문을 옆에 놓고 번역을 시작하려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번역에 왕도는 없다. ‘번역 길라잡이’는 문자 그대로 ‘길라잡이’일 뿐이다.


 번역은 자신이 꾸준히 해갈 때 영어를 분석하는 실력만이 아니라 한국어로 표현하는 능력도 아울러 향상된다.


출처 : <출판저널> 2007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