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한 번역가에게 소송을 당했다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 이유는 겉표지에 번역가 이름에 빠졌다는 것이다. 속표지에는 번역가 이름이 뚜렷이 명기됐다.
두 번째 이유는 외국의 저자가 친분 있는 한국인을 편집자로 명기해달라고 번역본이 출간되기 직전에 한국 출판사에 부탁했는데 그 한국인을 공동 저자로 병기했다는 것이다.
위의 두 이유가 소송까지 제기할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번역가 이름이 겉표지에 표기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또 한국 출판사가 한국인을 편집자 대신에 공동저자로 한 것은 원저자가 불평할 일이지 번역가가 따질 일도 아닌 듯하다.
세 번째 이유는 출판사가 번역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번역문을 변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가가 무척 어려운 단어를 썼다.
여하튼 해당 출판사와 이어온 인연으로 그 소송장을 보았고 번역가가 첨부한 자신의 번역과 원문을 보게 됐다. 번역문을 읽다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번역의 충실도가 크게 떨어졌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단어의 뜻과 어울리지 않게 조합된 단어들은 대충 뭉뚱그려 버렸다. 사전을 열심히 찾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1페이지만 정밀하게 살펴봤지만 오역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소송장에 쓰인 전화번호로 번역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하면 소송을 포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번역가가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물었다. 그래서 정중하게, 아주 정중하게 “번역에 좀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내가 영어를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고 화를 냈다.
번역가는 편집자가 아니다
오늘 하고 싶은 말이 세 번째 이유에 함축되어 있다. 번역을 배우면 실력이 늘까? 는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번역가의 시각과 편집자의 시각은 다르다.
물론 원문에 충실하면서 편집자가 손을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번역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편집의 차원에서 약간의 가감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번역가가 애초부터 가감할 필요까지는 없다.
특히 문장이 길다고, 번역가가 쓸데없는 글이라 판단해서 날려버린다면 그런 번역은 번역이 아니다. 번역 실력을 키워가고 싶다면, 복잡한 단어들이 얽혀 있어도 그 조합을 우리말답게 풀어가는 훈련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원문의 한 단어까지 번역하려고 애써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There was an approach ... that didn't sport the latest marketing trick이란 문장에서 sport란 단어가 생소하다.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던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다. 그래서 '현재의 마케팅 전략과 다른 ... 접근법이 있었다'라고 번역해버리면 될까?
sport란 단어에 담겨있는 저자의 풍자적 의도가 사라져버렸다. 잘 아는 단어라도 한 번 더 찾는 성의와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그랬다면 sport에 '뽐내다'라는 뜻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번역에 처음 입문해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편집하지 마라. 복잡하게 나열된 단어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말답게 재조합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라. 그때 우리말 구사력도 더불어 향상된다. 번역은 어차피 우리말로 하는 것이다.
겸손이 실력 향상을 위한 조건이다
위의 사례에서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번역을 배우고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교만하지 마라! 항상 겸손해라.
내가 영어를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데……. 내가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극단적으로 말하면, 번역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이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번역 실력의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남의 지적을 하나하나 모아가는 것에서 재미까지 느껴야 한다.
예컨대 mixed feelings를 ‘양면적 느낌’이라 번역했다고 해보자. ‘양면적’이라 하면 보통 둘을 뜻한다. 따라서 양면적 느낌은 대립되는 두 느낌을 연상시킨다. mixed의 뜻을 살리지 못한 번역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잡다한, 각양각색의’라는 뜻이 찾아진다.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잡다한 느낌’이란 표현은 좀 어색한 듯하다. 이때 누군가 ‘이런저런 느낌들’이라 하면 어떨까라고 말한다면? 어린아이가 말했더라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언젠가 우리 어머니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가 “네 번역은 어려워서 못 읽겠더라!”고 말했다. 나름대로 쉽게 번역한다고 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대들고 싶기도 했지만 어머니에게 감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 내가 인문이나 사회과학을 주로 번역해서 그런 책을 읽고 저렇게 말씀하는 거야.”라고 자위하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싫었다. 어머니의 예리한 지적은 내게 눈높이를 낮추고, 더 쉬운 단어로 더 쉬운 문장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반성할 기회를 주었다.
가상 독자를 짝으로 번역을 배우면 실력이 늘까? 그렇다! 번역 실력은 분명히 향상시킬 수 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조건을 충실히 지키면 된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법을 쓴다. 나와 개인적으로 번역 공부를 하는 식구가 이제는 17명으로 늘었다. 나는 그들에게 형제·자매보다 더 친근하게 지내라고 강요한다. 그렇다. 거의 강요의 수준이다. 그들이 번역거리를 맡을 때마다 나는 번역가에게 번역을 읽어주는 짝을 붙여준다.
번역을 읽어주는 것도 번역 공부의 일부다. 만약 번역에 문제가 생기면 공동으로 책임지게 한다. 짝은 냉정한 독자가 되도록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이상하고 어색한 문장에, 앞뒤가 맞지 않는 문장에는 가차 없이 줄을 그어 번역가에게 다시 번역하도록 요구하라고 한다.
번역가는 원문의 내용을 머릿속에 기억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독자는 원문을 읽지 않고 번역본에만 의존해서 글을 읽는다. 이런 독자의 역할을 짝에게 미리 맡기는 셈이다. 나는 그 짝에게 가혹한 독자가 되라고 요구하고, 번역가에게는 그런 지적을 조금도 고깝게 생각지 말라고 말한다.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그런 지적에 사전을 한 번 더 찾고, 문장을 한 번 더 다듬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충실히 따라주는 그들이 고맙다.
번역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가? 그럼 남의 번역을 읽어주고, 가상 독자를 만들어라. 그리고 가상 독자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 번 생각해라. 이것이 번역에서 최고의 공부다.
출처 : <출판저널>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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