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실로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앙리 뒤낭이 <솔페리노의 회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창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므와니에는 적십자의 설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1864년 8월 22일에 체결된 제네바협약은 현대 국제인도법의 출발점으로 대부분이 그의 펜 끝에서 나왔다. 므와니에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국제적십자(ICRC)의 총재로 재임하면서 위원회의 정책적인 기본틀과 함께 업무의 근간이 되는 기본 지침을 마련했다. 또한 국제법학회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국제형사재판 체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와니에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이름은 곧 잊혀졌다. (귀스타브 므와니에 / 프랑스와 브뉘옹 / 대한적십자사 중에서)
앙리 뒤낭과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와 인도주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앙리 뒤낭은 1864년 6월 24일 프랑스-사르드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벌인 전투에서 10시간 동안 6천 명이 넘는 사망자와 4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참상을 보고 <솔페리노의 회상>을 발표했다. 이 한 권의 책은 국제적십자운동과 제네바협약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01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국제적십자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구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와 제네바협약을 만들고 조직의 틀을 갖춰 세계적인 인도주의 기관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결단력이 있었으며, 업무추진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스위스에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명성과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창립자 중 한 명이다가 1967년 제명된 앙리뒤낭이 비참한 삶을 살며 떠돌았지만 훗날 대중적인 인기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면,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의 뼈대를 튼튼히 세워 명성과 영예를 누렸지만 죽고 난 후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 두 왕을 떠올렸다. 치밀한 전략과 과감한 결단으로 천하를 통일한 조조보다 유비, 관우, 장비가 더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능력과 감동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과는 분명 목표와 계획 그리고 추진력을 갖춘 수완가가 마무리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귀스타브 므와니에의 노력은 값지다.
이 책에서 귀스타브 므와니에와 앙리뒤낭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지도층이었던 두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모으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고, 사회의 발전과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했다. 통계학의 선구자였던 므와니에는 여러 저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주제가 노동, 경영, 자선, 이민, 화장 등 다양하였으며 복지사회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은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편법을 쓰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서민들이 먹고 사는 골목상권까지 뺏으려 하고, 권력을 이용해 공정사회와 법치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언론을 통해 자주 본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쉽지만 이 책은 비매품이다)
<기타> 두 사람 모두 1910년 세상을 떠났다.
친구이면서 경쟁자였던 두 사람의 운명, 이 또한 나에게 극적이다.
앙리 뒤낭과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와 인도주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앙리 뒤낭은 1864년 6월 24일 프랑스-사르드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벌인 전투에서 10시간 동안 6천 명이 넘는 사망자와 4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한 참상을 보고 <솔페리노의 회상>을 발표했다. 이 한 권의 책은 국제적십자운동과 제네바협약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01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국제적십자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구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와 제네바협약을 만들고 조직의 틀을 갖춰 세계적인 인도주의 기관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결단력이 있었으며, 업무추진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1864년부터 1910년까지 스위스에 있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명성과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창립자 중 한 명이다가 1967년 제명된 앙리뒤낭이 비참한 삶을 살며 떠돌았지만 훗날 대중적인 인기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면, 귀스타브 므와니에는 적십자의 뼈대를 튼튼히 세워 명성과 영예를 누렸지만 죽고 난 후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 두 왕을 떠올렸다. 치밀한 전략과 과감한 결단으로 천하를 통일한 조조보다 유비, 관우, 장비가 더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능력과 감동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과는 분명 목표와 계획 그리고 추진력을 갖춘 수완가가 마무리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귀스타브 므와니에의 노력은 값지다.
이 책에서 귀스타브 므와니에와 앙리뒤낭의 공통점도 발견했다.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지도층이었던 두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모으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고, 사회의 발전과 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했다. 통계학의 선구자였던 므와니에는 여러 저서를 발표하였는데, 그 주제가 노동, 경영, 자선, 이민, 화장 등 다양하였으며 복지사회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런 면에서 두 사람은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편법을 쓰고,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서민들이 먹고 사는 골목상권까지 뺏으려 하고, 권력을 이용해 공정사회와 법치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언론을 통해 자주 본다.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쉽지만 이 책은 비매품이다)
<기타> 두 사람 모두 1910년 세상을 떠났다.
친구이면서 경쟁자였던 두 사람의 운명, 이 또한 나에게 극적이다.
'책읽는 거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몸으로 책 읽기 (0) | 2012.04.14 |
---|---|
뿌리 깊은 글쓰기 (2) | 2012.02.25 |
부러진 화살 / 서형 / 후마니타스 (1) | 2012.02.07 |
앙리뒤낭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3) | 2012.02.03 |
어느 바람 / 고은 / 창작과 비평사 (0) | 2012.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