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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거북이

앙리뒤낭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앙리 뒤낭보다 더 기구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는 솔페리노 전투(1859년 6월 24일)의 참상을 보고 나서 자신의 목격담을 토대로 <솔페리노의 회상>을 발표했다. 이 충격적인 경험은 훗날 적십자와 제네바협약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누렸다. 그러는 그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1867년 파산의 대가로 빚더미에 올라앉으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때 황제와 장관들로부터 귀빈대접을 받았던 그는 배고픔에 굶주리고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빈곤에 허덕일지언정 대의명분을 위한 투쟁을 끝까지 포가하지 않았다. 뒤낭은 전쟁포로의 보호, '세계도서관'사업, 여성의 권리, 국제적인 중재와 관련해서 지속적인 활약을 펼쳤다. 몇 년간의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끝에 그는 재기에 안간힘을 썼고, 마침내 1901년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1910년 10월 30일 하이덴에서 생을 마감했다.  - 앙리뒤낭 / 로저뒤랑 / 대한적십자사 중에서

  이 책은 앙리뒤낭에 관한 전기다. 이 책은 비매품이다. 이 책은 제네바 태생으로 1975년 앙리뒤낭협회를 창립한 역사학자 로저뒤랑이 썼는데, 최근에 번역되어 전국 적십자사에 배포되었다. 나는 최근에 봉사원을 대상으로 국제적십자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차 오르는 궁금증이 있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주의 조직을 만든 장본인이 앙리뒤낭이란 것을 알겠는데, 정작 이 사람의 일생은 어땠을까가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을 받고 읽고서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유명인의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어보면 참 훌륭하긴 한데 뭔가 인간답지 못함을 느낀다. 가령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아름답게 꾸밈으로서 마치 남들과 다른 존재라는 걸 과시한다. 이런 면이 후학에게는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으나 나는 늘 거북스러웠다. 마치 표창을 위해 공적조서를 받아 읽었을 때 어이쿠 이런 완전무결한 인격체라니 하는 당황스러움이랄까..그런 경우가 또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인터뷰 기사를 읽을 때다. 누군가 인터뷰는 '구라'다라고 말한 걸 들었는데, 어느정도 공감한다. 어제 느낀 감동이 오늘은 실망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인물을 다룬 인터뷰에서 한두번 본 게 아니니까..

  나는 <앙리 뒤낭>을 읽으면서 뒤낭의 인간적인 면을 알게 되어 참 좋았다. 앙리뒤낭이 사업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적십자 창설을 위해 유럽사회를 돌아다니며 노력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때 시작된 한 알의 밀알이 오늘날 튼튼한 뿌리를 지닌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편으론 앙리뒤낭도 사업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심적 고통과 절망, 궁핍과 배고픔 속에서 지낸 나날도 있었다. 종교적 편향성을 때로는 범했으며, 우울과 피해망상에 빠져 있기도 했다. 인간은 늘 실수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실수를 바로잡아 가면서 더 좋은 사람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인간의 올바른 성장과정이잖는가.

 앙리 뒤낭은 "어제의 유토피아는 내일의 현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추구했던 정신은 21세기에도 유효하다. 여기 대한민국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