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이면 세계의 이목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에 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쏠린다. 노벨상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지난 8일에는 노벨평화상 발표가 있었다. 권력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지켜낸 두 언론인 마리아 레사(필리핀), 드미트리 무라토프(러시아)에게 올해의 상이 돌아갔다.
노벨상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우리에겐 노벨평화상이 가장 친숙하다.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벨상이 적십자와도 특별한 인연이라는 것을 아시는가? 적십자가 노벨평화상 최다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 1번도 수상하기 힘들다는 평화상을 무려 4번이나 수상하였다.
1901년 적십자 창립을 주도한 장 앙리 뒤낭이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레데리크 파시와 함께 제1회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부상당한 병사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국제사회의 이해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 공이 크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뒷이야기이지만, 스위스 하이덴 양로원에 있던 앙리 뒤낭은 고령의 나이로 쇠약해서 오슬로까지 갈 수는 없었다. 앙리 뒤낭은 자신이 받은 상금을 노르웨이 은행에 예금했고, 상금은 1910년 사망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앙리 뒤낭의 유언에 따라 상금 절반은 노르웨이 적십자사와 여성공중보건협회에, 나머지 절반은 스위스 단체에 기부되었다.
이밖에도 1917년 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자와 전쟁포로 및 그 가족을 보살핀 노력으로 국제적십자위원회가(ICRC)가, 1944년에는 2차 세계대전에서 펼친 인도주의 활동으로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재차 받았다. 그리고 적십자 창립 100주년인 1963년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와 국제적십자사연맹이 제네바 협약의 원칙과 협력을 증진한 공로로 공동 수상하였다.
노르웨이 저널리스트이자 노벨위원회 위원이었던 C. J 함브로는 1963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올해는 적십자사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두 기관에 노벨평화상을 제공하기로 결정 내리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1863년에 적십자사를 구성하여 활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적 중 하나이다."라며 연설 소감을 남겼다.
이처럼 적십자의 수상기록은 노벨상 전체를 통틀어 오늘날까지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내 생각에는 과거에 비해 전세계를 뒤흔드는 전쟁은 줄어든 반면 사회문제는 점차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개별 이슈에 집중해서 대응하는 인물이나 단체들에게 평화상 수상의 기회가 더 가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적십자의 수상기록은 오래도록 역사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노벨상이란>
노벨상은 스웨덴 발명가이자 기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 ~ 1896)의 유언에 따라 인류를 위해 크게 공언한 사람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노벨은 죽기 한 해 전인 1895년에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5개 분야에서 매년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유언과 함께 3100만 크로네(440만 달러)를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하였다. 이 유산을 기금으로 1900년 노벨재단이 설립되고, 1901년부터 노벨상은 수여되기 시작되었다. 노벨상은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국왕이 직접 참석해 순금메달과 인증서를 수여하는데 이날은 바로 노벨이 죽은 날이다. 노벨평화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지에 따라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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