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리처드 닉슨은 그 진리를 뼈아픈 방식으로 깨달았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고 그가 한창 사임 압력을 받고 있던 당시의 일입니다. 이때 그는 TV에 나와 연설을 했는데 여기서 닉슨은 전 국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그 순간 모두가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P21
성완종 게이트가 터지고, 언급된 인사들이 망자(亡者)와의 관계를 언론에 부인하거나 축소 해명(?)하고 있을 때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이미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어."라는 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본인도 알고 있을 터이고 검찰이 제 역할을 할 지는 기다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암튼 프레임은 참 놀랍고도 무서운 덫이다.
프레임은 이제 일상화된 말이 되었다. 회의나 대화에서도 우리는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쉽게 언급하곤 한다. 인지과학의 창시자인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우리는 언어를 통해 프레임을 인식하며, 어떤 단어를 들으면 관련 프레임이 우리 뇌에서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가령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 우리는 코끼리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진보적 학자인 저자는 미국의 정치현실을 예로 들면서 강경한 어조로 프레임 구성의 필요성과 진보세력의 분발을 촉구한다. 보수진영은 오랜 세월 이 프레임 구축을 위한 인적 물적 투자를 계속해 왔고, 그 결과로 선거를 재패하는 재미를 톡톡히 누려왔다. 이제 진보진영은 이렇듯 상대가 쳐 놓은 프레임을 능수능란하게 피해 가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상대에게 치는 기술을 이제는 전개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국내정치도 이 책을 교재삼아 볼 만한다. 정당간 정치가 지향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고, 거짓과 지리멸렬이 맞부닥치는 현실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를 점점 도외시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는 공적인 가치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진보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난국을 빠져 나오기 위한 프레임 구성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프레임과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와의 연관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추진코자 할 때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사람들의 뇌리에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산물을 들이밀어봤자 수용될 리가 없다는 점을 배웠다. 그리고 제대로된 프레임은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분야에서 다각적으로 유용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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