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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거북이

<오늘의 책 2015-2> 남자의 물건 (김정운, 21세기북스)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기는 쉽지 않다. 말이나 글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 면에서 김정운 소장는 잘난 사람이다. 국민의 방송(?)에서 연초 전 국민 대상으로 썰을 풀 수 있도록 시간을 배정했을 정도니 말이다.

 

KBS 신년기획 <오늘 미래를 만나다> 특강을 봤다. 3부작 중 2부는 못 봤다. 방송이 나올 때 이미 <에디톨로지>를 읽은 상태였으니 책 속의 내용이려니 짐작한다. 강의를 보고서 드는 생각은 역시나 강의를 참 잘한다는 거. 프로란 이런거지. 그의 강의는 언제나 쉽고, 명쾌하다. 그의 언어가 현학적이지 않고, 일상의 수준에 맞춰지 있는 까닭이다.

 

그의 책도 좋다. 내 책꽂이에는 그의 책 네 권이 있다. 전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노는 만큼 성공한다><에디톨로지> 그리고 최근 알라딘 중고샵에서 산 <남자의 물건>까지. 한번 좋아하게 되면 계속 보게 되는 몹쓸 버릇탓에 앞으로도 나는 그가 책을 내면 지갑을 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남자의 물건>이라는 제목. 그럴싸하다. 핫. 남자의 물건이라니. 남자에게 물건(?)은 얼마나 성스럽고 중요한 곳인가. 발칙하면서도 자유로운 제목. 물론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개인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남자의 소장품을 말하고 있음을 안다.

 

실험적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은 개의 정신질환이 아니다. 인간의 상황을 개에게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랜 기간 처하면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 스스로 차를 운전하면 절대 멀미를 하지 않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도무지 차가 언제 가고 언제 서는 지 예측할 수 없이 그저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p26

 

개도 시키는 일만 하면 미친다. 이제라도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제발 쫄지 말자는 이야기다! p27

 

남자의 삶은 고단하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지탱된다. 가족을 위해 살고 있지만, 그 댓가로 자신을 위한 삶을 조금씩 양보하게 된다. 슬픈 남자의 자화상이다.

 

2부에서는 10인의 물건에 대해 다룬다.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까지.

 

나는 이 가운데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가 좋았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이 글에서 본다.

 

세계적인 스타, 국가대표 감독, 프로축구 감독, 축구 해설위원 등 정말 많은 것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차범근이지만, 행복이란 바로 가족과 함께 했던 그 아침식사였다는 이야기다. 계란받침대는 바로 그 행복의 증거물인 것이다. p200

 

나는 어떤 물건으로 규정될 수 있을까?

아내에게 물어보니, 휴대폰 충전기라고 한다. 항상 끼고 다녀서 그렇단다. 그저 웃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