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는 의무가 되어선 안 된다고 믿습니다. 즐거워서 읽고, 읽은 것 내에서 얻으면 좋다고 봅니다. 그런데 책 읽는 진도가 잘 안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를 만나면 이만저만 심경이 복잡한 게 아닙니다. 읽어야 할 것은 넘치는 데, 그냥 덮고 넘어가자니 뭔가 아쉽고 그냥 가자니 머리 따로 내용 따로 헛수고가 될까 싶은 거지요. 진도가 안 나가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책이 전문적일 수도 있고, 집어 읽다보니 생각보다 별로 일수도 있고, 번역이 엉망일 수도 있고 다양합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내 일상 공간의 문제도 때로는 책읽기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일상은 분주합니다. 책 읽기는 본업활동 외 시간에 짬짬이 이루어집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내 일이 아닙니다. 온전히 나에게 주어지는 규칙적인 시간이 있다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불규칙합니다. 조직생활자인 회사원으로선 주중에 야근도 해야 하고, 때론 후배나 선배와 술자리도 해야 하고, 새로운 취미생활로 시작한 기타 수업도 참여해야 하고 가족을 위한 시간도 가져야 하니 말이죠. 열을 두루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하나를 하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9월 초 무더위가 지나고 이제 책이 손에 잡히겠지 생각했지만 그냥 내 생각이었나 봅니다. 최재천의 <최재천스타일>과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동시에 읽고 있자니 두 권 모두 지지부진합니다.
명절을 틈타 여름에 못 간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여행길에 머리 아픈 심리학 책 보다는 가볍게 읽을 책을 집었습니다. 최재천의 <최재천스타일>입니다. 이미 2/3는 읽었습니다. 확실히 여행중에 읽으니 책이 쏙쏙 들어옵니다. 활자에만 집중할 수 있어 그런가 봅니다. 때로는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책을 읽으면 잘 읽히는가 봅니다. 아마도 그래서 대통령이나 CEO들이 휴가를 가면서 책을 들고 가나 봅니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최재천 교수의 <최재천스타일 / 명진출판>은 대한민국 대표 동물생물학자가 자신의 일상, 독서에 대한 소감, 자신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그는 이미 30여권을 책을 펴내고 번역한 작가입니다. 이 책이 나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지식에 대한 균형입니다. 오늘날 시대는 융합의 시대이며 통섭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물과 세상에 대한 접근을 한쪽 측면에서만 바로보는 경향을 보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하는 책만을 보며, 좋아하는 방면에서 세상의 일면을 봅니다. 일면에서 보는 것보다 여러 면에서 보는 것이 훨씬 사물과 세상에 대해 올바르고 합리적인 견해를 갖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변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네 시간을 온전히 글 읽기와 글 쓰기에 투자하는 저자의 노력에 감탄합니다. 역시 한 분야의 대가에게는 남다른 땀과 노력의 과정이 있음을 배웁니다. 그에 비하면 나의 노력은 더 첨예하며 꾸준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칼 날을 벼리는 과정처럼 말이지요. 역시나 고통없이 결실없나 봅니다. No pain, No gain!
번역에 대해선 다른 견해를 갖습니다. 오늘날 모든 분야는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학문도 이제 전문번역가들이 번역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물론 그 분야에 대해 가장 정통한 사람이 번역하면 내용이 충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번역가들이 잘하는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번역가가 번역하고, 과학자들이 감수하면 매끄러우면서도 적확한 내용이 담길 테지요.
지적생활인이 되기란 진정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하나의 스타일이라는 제목으로 옮긴 출판사의 의도에는 이제 최재천이라는 교수가 우리 사회에서 일관된 흐름을 만들고 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한 상태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 권을 마쳤으니 그의 전작들을 찾아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겉을 훑었으니 좀더 속을 파서 먹어봐야 안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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