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따뜻한 세상

저금통을 들고 온 천사

<신동인 충북적십자사 사무처장, 이채연, 이근호, 변현학 청나적십자봉사회원>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기관인 적십자를 만든 장 앙리뒤낭(Jean Henry Dunant, 1828년 ~ 1910년)은 어린시절 자선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던 가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어릴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빈민가를 다니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보았다. 또한 당시 복지국의 담당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형무소를 내방하였는데 죄수들이 쇠고랑을 찬 채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어른이 되면 그런 야만적인 사회가 벌이고 있는 온갖 불평등에 반대하는 책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앙리뒤낭은 훗날 사회사업가가 되었으며, 1901년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를 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훌륭한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의 총합이 그 사람 자체인 것이다. 이렇듯 무엇을 보고 어떤 일을 하며 자랐느냐가 그 사람 인생의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내가 재원조성 업무를 담당할 때 기억에 남는 최연소 기부자 둘이 있었다. 이근호ㆍ이채연 남매가 주인공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근호는 초등학교 6학년, 채연이는 3학년이었다. 둘은 한 해동안 먹고 싶은 음식 안 먹고, 사고 있는 물건 안 사고 모은 돈을 저금통에 담아 연초 적십자사에 기부했다. 이후에도 해마다 1월이 되면 적십자사를 찾아 일년간 모은 기부금을 전달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훈훈한 마음씨로 바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청나적십자 봉사원으로 활동중인 어머니의 인도가 컸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봉사활동 현장에도 자연스럽게 데리고 다녔고, 기부도 알게모르게 가르쳤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볼때마다 웃는 얼굴로 밝고 예의바르다.

 어제 근호와 채연이가 사무실을 찾았다. 어느새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간다고 했다. 근호는 키가 이제 나보다도 크고, 채연이는 얼굴에 오돌도톨하게 사춘기의 징표인 여드름도 나 보였다. 근호는 연두색, 채연이는 분홍색 저금통을 들고 왔다. "옛날보다 이제 저금통에 지폐도 많네."라고 하자 "저희도 이제 컸잖아요."하고 채연이가 응수한다. 말도 이쁘고 마음도 이쁘다. 저금통을 전달하고 근호는 헌혈도 하고 돌아갔다.

 아이들이 입시경쟁과 학교폭력 때문에 아파한다. 남을 밟고 서려는 마음으로는 세상을 이웃을 친구를 품을 수 없다. 나누고 도우려는 마음이 먼저일 때 상처난 자리가 치유되지 않을까..근호와 채연이를 보면서 희망을 느낀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근호와 채연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따뜻한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재를 겪는다면  (0) 2012.02.13
비워야 채워 진다는 것을  (0) 2012.02.11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길 바라며  (0) 2012.01.26
나눔은 더 멀리  (0) 2012.01.15
에누바이러스와 봉사원  (0) 2011.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