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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거북이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다 읽은 뒤 노트북 앞에 앉아 인터넷에서 '행복'을 검색했다.
 옛 선현들은 행복을 두고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중 두어개 옮겨본다.

하나.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고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 (윌리엄 제임스)
하나. 행복은 작은 새처럼 붙들어 두어야 한다. 부드럽게 살짝.
        새는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끼면 기꺼이 그 손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헤벨)

 행복이 뭔지 궁금하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실 이 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됐던 글의 모음이다. 경향신문을 받아볼 시점이 이 책에서 <지리산 노총각들의 비가> 즈음이었던 관계로 이전 글을 읽지 못한 나로선 아쉬움이 컸다. 
 
 아쉬움도 있었겠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기에 주저앉고 골랐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내 머리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행복'과 '친구'가 그것이다. 삶은 팍팍하다. 그리고 덧없다. 직장에서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우리집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가 타는 차 배기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늘면 늘수록 행복은 커질거라 생각하지만, 정작 행복은 소유와 비례하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직장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우리집 크기를 키우려면, 더 큰 차를 사려면, 더 많이 축적하려면 그만큼 나를 버리고 살아야 한다. 아침일찍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버려야 하고, 친구와의 만남도 점점 뜸해지며, 건강마저 적색신호가 들어올 지 모른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욕심내지 않고 나눌 줄 알며 서로를 반길줄 안다. 지리산만 가면 사람이 이처럼 평온해질까..지리산이라는 거대한 모성이 인간의 모든 악함을 거둬들여 순수한 인간으로 되돌리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리산과 나 만일 둘 만이었다면 이는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수행의 삶처럼 고통스런 행복일지 모른다. 인간의 삶이란 게 치고 박고 터지고 메우는 다사다난한 삶이잖는가. 하지만 도심속의 다사다난은 서로와 경쟁하고 짙밟고 시기하지만, 지리산 인근의 사람들은 서로를 걱정하며 도우며 웃으며 산다.

 그렇다. 그런 관계속에서 행복이 싹튼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서로 관계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관계와 자연이 함께 할 때 행복은 저절로 커지고, 평화가 내면에 자리한다.

 올해는 지리산에 가고 싶다. 언젠가 지리산 자락이든 그곳이 아니라면 어느 산 자락에 살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뜻 맞는 벗들과 여유롭게 살고 싶다.

 그곳이 그립고, 우정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