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서 2011년도 자랑스러운 봉사회 시상식이 있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참석이었다.
올해는 남자봉사원으로 이루어진 제천참사랑봉사회가 수상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이 상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좀체 가 볼 수 없는 총리공관을 다녀온다는 점과 186개 봉사회를 대표해 받는다는 점이 큰 매력일 것이다. 행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제천에서 오신 봉사원님들이 오늘은 제천으로 함께 가자고 하셨지만, 선약이 있어 사양했다. 김남성 팀장님의 정년퇴임식이 청주에서 있기 때문이었다.
혈액원에서 정년을 맞으신 김 팀장님은 나의 직장생활 첫 상사였다. 당시 총무팀 서무로 첫 발을 디뎠는데 그 때 부서장님이셨다. 20대 푸릇한 나는 말 그대로 풋내기였고, 연세가 지긋한 팀장님은 말은 많지 않으셨지만 유머감각이 탁월했고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었으며 잘 대해주셨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도 꽤나 팀장님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을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굵직한 일을 턱하니 맡기고 해 오라고 하시는데 좀처럼 이해가기도 바쁘고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이 양반이 나를 싫어하는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나에게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 하신 일이었다.
팀장님과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팀장님과 근무할 때 나는 결혼을 했다. 사주단지에 글을 써 주시겠다고까지 하셨는데 함을 들이지 않기로 아내 (당시 여자친구)와 합의해 정중히 사양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멀리 경주에서 회의를 마치고 청주로 가셔도 되는데 안성까지 와서 위로해주고 가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팀장님은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당시 육임을 공부하고 계셨다. 그때 고모부가 그쪽 일을 하시는 분이어서 살짝 아는지 여쭸더니 이것 참! 고모부가 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계신 터였다. 책 값이 워낙 비싸서 복사본으로 공부하시기에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넣어 책을 구할 수 없는 지 알아보았다. 사촌동생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 밖이라 어찌하지 못하였지만 내 맘은 책 한 권 공짜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쉽게 남아 있다.
떠나가는 마당에 일을 잘했네 못했네 열심히 했네 안 열심히 했네 하는 이야기는 다 필요없다. 31년간 한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인정받아야 한다. 팀장님도 이 직장에서 풋풋한 새내기였고 장가도 갔을 테고 아이도 얻었을 테고 보직도 받았을 테고 봉사현장도 수십차례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김 팀장님의 퇴임사를 유심히 들었다. 평소 같으면 길게 느껴 졌을 수도 있지만, 직장생활 마지막 송별사요, 더이상 오지 않을 이별사이기에 길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마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팀장님도 지난 네 달동안 쉬면서 할 일 보다는 지난 일이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80년 입사하던 해 RCY 담당으로 보은 수련원에 있을 때 큰 수해가 났던 일, 댕기머리를 땄던 30년 전 직원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고, 스스로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일반 직장은 싫고 더러운 일도 시키고 해야 하지만 적십자는 그런 일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이해관계가 없다보니 조직이 밖에 나가 힘도 못쓴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정년을 맞기 전에 사회에 나가야 하지 않나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정년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 스스로 조직에 안주해선 안 되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변화의 고민을 최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흐른다. 직장생활도 사계가 있겠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나의 직장생활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창 뜨거운 여름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걸 우린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끝도 직장생활의 끝이지, 인생의 끝은 결코 아니다. 끝은 곧 다시 출발하는 시작점이다.
밥 먹으면서 곁에 다가가 술 한잔 올렸다.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
올해는 남자봉사원으로 이루어진 제천참사랑봉사회가 수상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이 상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좀체 가 볼 수 없는 총리공관을 다녀온다는 점과 186개 봉사회를 대표해 받는다는 점이 큰 매력일 것이다. 행사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제천에서 오신 봉사원님들이 오늘은 제천으로 함께 가자고 하셨지만, 선약이 있어 사양했다. 김남성 팀장님의 정년퇴임식이 청주에서 있기 때문이었다.
혈액원에서 정년을 맞으신 김 팀장님은 나의 직장생활 첫 상사였다. 당시 총무팀 서무로 첫 발을 디뎠는데 그 때 부서장님이셨다. 20대 푸릇한 나는 말 그대로 풋내기였고, 연세가 지긋한 팀장님은 말은 많지 않으셨지만 유머감각이 탁월했고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었으며 잘 대해주셨다. 하지만 처음에는 나도 꽤나 팀장님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을 하나하나 배워나가야 하는 처지에서 굵직한 일을 턱하니 맡기고 해 오라고 하시는데 좀처럼 이해가기도 바쁘고 따라가기도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이 양반이 나를 싫어하는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모두 나에게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 하신 일이었다.
팀장님과는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우선 팀장님과 근무할 때 나는 결혼을 했다. 사주단지에 글을 써 주시겠다고까지 하셨는데 함을 들이지 않기로 아내 (당시 여자친구)와 합의해 정중히 사양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멀리 경주에서 회의를 마치고 청주로 가셔도 되는데 안성까지 와서 위로해주고 가셨다. 이런 일도 있었다. 팀장님은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었는데 당시 육임을 공부하고 계셨다. 그때 고모부가 그쪽 일을 하시는 분이어서 살짝 아는지 여쭸더니 이것 참! 고모부가 쓴 책으로 공부를 하고 계신 터였다. 책 값이 워낙 비싸서 복사본으로 공부하시기에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넣어 책을 구할 수 없는 지 알아보았다. 사촌동생이 관여할 수 있는 범위 밖이라 어찌하지 못하였지만 내 맘은 책 한 권 공짜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 부분은 지금도 아쉽게 남아 있다.
떠나가는 마당에 일을 잘했네 못했네 열심히 했네 안 열심히 했네 하는 이야기는 다 필요없다. 31년간 한 직장에서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인정받아야 한다. 팀장님도 이 직장에서 풋풋한 새내기였고 장가도 갔을 테고 아이도 얻었을 테고 보직도 받았을 테고 봉사현장도 수십차례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김 팀장님의 퇴임사를 유심히 들었다. 평소 같으면 길게 느껴 졌을 수도 있지만, 직장생활 마지막 송별사요, 더이상 오지 않을 이별사이기에 길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하고 싶은 말을 그 짧은 시간 안에 마친다는 일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팀장님도 지난 네 달동안 쉬면서 할 일 보다는 지난 일이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80년 입사하던 해 RCY 담당으로 보은 수련원에 있을 때 큰 수해가 났던 일, 댕기머리를 땄던 30년 전 직원의 과거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고, 스스로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일반 직장은 싫고 더러운 일도 시키고 해야 하지만 적십자는 그런 일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이해관계가 없다보니 조직이 밖에 나가 힘도 못쓴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정년을 맞기 전에 사회에 나가야 하지 않나 고민을 많이 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정년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나 스스로 조직에 안주해선 안 되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변화의 고민을 최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세월은 흐른다. 직장생활도 사계가 있겠지.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나의 직장생활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창 뜨거운 여름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걸 우린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끝도 직장생활의 끝이지, 인생의 끝은 결코 아니다. 끝은 곧 다시 출발하는 시작점이다.
밥 먹으면서 곁에 다가가 술 한잔 올렸다.
앞날에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