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놓은 목록을 버킷리스트라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종이에다 적어 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살면서 꼭 해 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절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앞서 경험할 기회는 있었다. 몇해 전 친한 후배가 절에서 사무장을 봤다. 한번 오라고 했는데 끝내 못 갔다. 후배가 절에서 내려와 도시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면서 기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지난 해 나는 힘든 일이 많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모두 지쳐 있었다. 하는 일에서도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마음에 평온이 필요했다. 근래 절에 있는 선배에게 내 얘기를 했더니, 가끔 전화로 아직도 마음이 그러냐며 자기 있을 동안 한 번 내려오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지난주 도솔암을 다녀왔다. 유명한 기도도량이라는데 궁금하기도 하고, 선배도 볼 겸. 선운사는 세 번째 방문이다. 산이 높지 않지만, 신묘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거리가 가깝지는 않다. 청주에서 2시간 30분 거리. 도솔암 주차장에 도착하니, 천마봉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양간에서 바라 본 천마봉
남들 쉴 때 바쁜 사람들이 있다. 우리 회사도 그렇지만,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주말에는 더욱 바빴다. 선배는 선배대로 근무하고, 나는 주변을 걸었다. 사람이 돌아간 숲길은 왠지 음산했다.
매주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새벽까지 철야기도가 있었다. 밤 9시 30분쯤 내원궁에 올라가 1시간 가량 경을 따라했다. 어느 나라 말일까. 내려 오는데 어머니 한 분이 오디를 잔뜩 담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힘겹게 올라오고 계셨다. 올해 처음 수확한 오디란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지만, 오디를 정상까지 올려다 드리고 다시 내려왔다.
새벽 4시 전 아침기상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렸다. 나는 조금 늦게 방에서 나왔다. 극락보전 밖에서 아침 예불을 들었다. 예불이 끝나고, 내원궁에 기도하러 스님이 올라 가시길래 나도 따라 올라갔다. 스님 곁에서 예불하고, 108배를 올렸다. 스님께서 오디를 공양간에 내려다 달라고 하셨다. 오디와 인연이 있었나 보다. 뭔가를 역할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침 식사를 한 뒤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원궁, 마애불,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까지 산을 한바퀴 돌았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옷차림이 산행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모처럼 땀을 흘릴 수 있어 좋았다.
절 마당은 산행하는 사람들과 천도제 하러 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나는 점심 식사를 하고, 청주로 돌아왔다.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낙조대 너머로 보이는 풍경
산 속에서 바라 본 도솔암
마애불
내원궁 오르는 길
내원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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