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에이미입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지난해 8월 청주에서 원어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한 미국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북한이탈주민에 관심이 많으며, 봉사활동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후 그는 타 지역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고, 야심찬 프로젝트가 이대로무산되나 싶었더니 그가 한 친구를 연결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미 라슨.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청주의 한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미국 뉴욕 출신으로 예일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에이미는 무엇보다 인권, 특히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다. 처음 <북한이탈주민 영어배움교실> 제안을 받았을 때, 파란 눈을 가진 마음 따뜻한 이방인은 북한이탈주민을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면서도 도와 주어야 할 이웃으로 느껴지 않았을까?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남을 위해 선뜻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에이미의 어머니가 큰 몫을 했다. 유엔본부에 근무하는 어머니 덕에 에이미는 어릴 적부터 유엔 문턱을 밥 먹듯이 들락날락했고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일찍부터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국에 오기 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만나본 적이 있다고 했다. 반 총장은 적십자의 자랑이자, 충북적십자 출신이라고 하니 무척이니 반가워 하면서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런 걸 보면 키는 훤칠해도 마냥 애들 같다.
지난 11월 5일 <북한이탈주민 영어배움교실>은 그렇게 탄생했다. 현재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하나센터 교육실에서 열리고 있다. 아직 걸음마단계라 갈 길이 멀지만, 나름 재밌는 성과를 얻었다.
하나. 에이미로 시작한 원어민 영어교사 자원봉사자가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에이미를 비롯해 앨리슨, 클라라, 라라, 질리언, 제나 등 자원봉사자들은 2명씩 짝을 이뤄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에이미와 앨리슨, 클라라가 주로 많이 오지만, 일이 있는 경우 돌아가면서 방문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순탄치는 않다. 풀어야 할 과제는 북한이탈주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공부하러 오는 북한이탈주민은 세 명이다. 세 명도 다 모여야 세 명이지, 일이 있어 하나 둘 빠지만 혼자 수업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재밌지 않은가? 북한이탈주민 한 명에 두 명의 선생이 가르치는 이상적인 수업분위기가?
북한이탈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을 하고 있어서, 거리가 멀어서, 여비가 부담돼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참여는 적다. 하지만 한 번 참여하면 북한이탈주민이 재미있어서 먼저 참여하고 싶어한다. 그 세명은 그렇게 중독돼 있다.
혹자는 우리 말도 못하는 북한이탈주민에게 영어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말은 이미 영어와 외래어로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첫 발을 딛는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사회의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어렵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이탈주민은 영어를 배우고, 원어민은 북한이탈주민에게 한글을 배운다면 이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우리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은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북한이탈주민을 동원해서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본인들이 자발적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그 시발점이 영어교실인 것이다.
에이미는 개별봉사원이 되었다. 다른 몇몇 외국인 친구들도 봉사원에 가입했다.
에이미는 미국에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예산이 있다며, 언제 그 예산을 받아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하이킹도 가고 프로그램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모두 가능하다. 왜냐고? 이제 우리는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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