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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거북이

<오늘의 책 2015-6> 모멸감 (김찬호, 문학과지성사)

 


모멸감

저자
김찬호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4-03-0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모멸감 ː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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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자기 지위를 이용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함부러 대하는 경향이 있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이다. 군대에 가면 선임, 장교라는 이유로 후임을 괴롭하고 추행하고 구타를 자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일삼는다. 국내 명문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는 제자와 인턴 여학생 9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이다. No.1 항공사 대한항공의 조 부사장은 기내 땅콩서비스에 대한 불만으로 사무장과 승무원을 밀치고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사건을 저질렀다. 당한 사람들이 받은 모멸감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한번 모멸받은 내면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자존감이 떨어지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를 다친 사람 보다 감정을 다친 사람이 더 일어서기 힘들어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저지르지 않는가. 이렇게 모멸감을 주는 행태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 앞으로는 얼마나 더 심해질 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모멸감이란 나의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을 뜻한다. 스스로 모멸감을 준 적은 없는 지, 모멸감을 받은 적은 없는 지 잠시 생각해 본다. 받은 모멸감이 다행히 깊지 않아 잘 넘기고 왔다고 생각한다. 나도 역시 모멸감을 준 적 또한 있을 것이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나는 완벽하지 않다.

 

성공회대 김찬호 교수의 <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을 읽었다. 작년 한해를 대표하는 좋은 저서라는 신문평을 읽고 샀는데, 딱 들어맞는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3장까지는 모멸의 정의, 우리 사회의 모멸의 구조, 모멸의 일곱가지 존재 방식(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에 대해 다룬다. 우리가 쓰는 언어에 부정적인 정서를 가리키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대목이 흥미롭다. 언어가 같은 사회집단의 사상과 감정을 담아낸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상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져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4장과 5장에서는 모멸 없는 사회를 위해 사회적인 차원에서 고려해보아야 할 과제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노력에 대해 다루었다. 인간다운 사회를 위해서 모욕감을 주는 조건에 저항하는 품위를 유지하고, 자신을 알아주는 공동체를 만나고, 돈을 넘어선 가치를 찾으라고 이른다. 개인에게는 감정의 주인이 되라고 이르면서 행복은 우월한 의식에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모멸감을 해소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벽들이 많다. 사회는 점점 양극화되어가고 있고, 다문화사회로 변모하고 있으며, 종교는 포용정신을 잃으며, 외모로 서열화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라도 언론은 긍정과 감사를 이야기하고, 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학교는 입시교육이 아닌 인성교육에 집중해야 한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노래하고, 분열이 아닌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은 자존감을 높여가야 한다. 그렇게 뚜렷하게 한걸음씩 나아가야만 부정적 언어의 사용이 줄고, 긍정적 언어가 널리 쓰이는 지금보다 조금은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