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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내일을 향한 도전 승진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올해 시험은 말이 많았다. 시험제도가 논술로 바뀐 첫 해였고, 논술에서 탈락한 사람이 없이 모두가 면접시험에 합격한 일도 이례적인 경우였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직속 선배 한 명이 시험을 치뤘다. 작년에 미끄러지고 올해 두 번째 도전하였는데, 나름 시험을 괜찮게 보았다고 말했었다.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후배로서 당연히 합격했으면 바랬다. 안따갑지만 결과는 냉정했다. 선배는 올해도 떨어졌다. 지금 비통한 마음일 듯 싶다. 합격자는 축하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끊임없이 받으며 구름 위에 뜬 것처럼 즐거워하겠지만, 나머지 모든 탈락자들은 절망스런 밤을 보낼 것이다. 내년은 나도 이 대열에 뛰어든다. 벌써 이렇게 짬밥을 드셨나 싶은데, 이제 간사와 관리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선배와 함께.. 더보기
의약품 슈퍼판매 태풍 '메아리'가 북으로 올라오면서 많은 비가 내렸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사무실에 다녀왔다. 이재민 발생은 한 가구 밖에 없다지만, 두 명이 실종되었다고 하니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5시에 모든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다다를 무렵 약국 앞을 지났다. 어김없이 약국은 문을 닫았다. 의약품 슈퍼판매 문제가 어디까지 진행됐나 갑자기 궁금해졌다. 의약품 슈퍼판매 논의가 뜨겁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슈퍼, 편의점 판매 의약품을 44개 품목으로 분류해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한낯 이익집단인 약사회에 떠밀려 정부기관인 보건복지부가 갈팡질팡되는 혼선을 겪은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행정기관의 수장은 도대체 국민이.. 더보기
조문 그리고 만남 대학 선배 아버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서울에서 식도암 수술을 받고 수술경과도 좋았다는데 쇼크가 와 돌아가셨다. 충북대학교 병원에 빈소를 마련하였고, 나와 아내는 조문하려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염을 마치고 나온 터라 선배는 눈이 퉁퉁 불어 있었고 목소리는 잠기어 있었다. 살아서 아버지와 정은 두터웠을까. 마지막으로 시신을 볼 수 있는 염 시간에는 참았던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그랬었다. 선배도 그랬을테지. 내가 도착한 시간이 오후 네 시. 수원에 사는 선배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접객실에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멀리서 가까이서 선후배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이제는 이럴 때 만나는구나. 지난 겨울 1년 위 선배가 과로사로 쓰러져 허탈하게 돌아가신 일이 .. 더보기
전화해 줘서 고마워 매달 통장으로 돈을 보내 드리는 할머니가 있다. 물론 독지가가 지정해 돕는 할머니다. 이 업무를 맡은 지도 일년하고 몇 달이 지났다. 돈을 보낸 횟수도 내가 일한 달수 만큼이다. 돈을 보내 드린다고 땡이 아니다. 가끔은 그 할머니가 잘 받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그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매월 8일이면 독지가에게서 돈이 들어온다. 그러면 일주일 내에 나는 돈을 보내준다. 이번달도 서류를 만들어 경리담당자에게 넘겼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이 있겠지. 며칠 지나 한번더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봉사원을 보내 조사라도 해봐야 하나. 어제 드디어 통화가 됐다. 병원을 가는 데 전화기를 놓고 갔다고 하셨다. 안도. 걱정했는데 다행이.. 더보기
엇갈림과 마주침 일이 이상하게 보이게끔 터졌다. 오늘은 술 먹자는 약속, 밥 먹자는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모두 다 뿌리쳤다. 집에 일찍 와야 했기 때문이다. 명분으로 치자면 오늘 면접시험을 치르고 온 선배와 술 한 잔 하는 거 온당 가능하다. 명분으로 치자면 야근을 위해 저녁 먹으러 가자는 선배와 밥 한 그릇 먹는 거 쉬운 일이다. 하지만 둘 다 거절했다. 집에서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이 참 웃기게 끝났다. 집에 와서 밥을 해 먹으려고 쌀곳간을 뒤져보니 흰 쌀이 없어서 집 앞에 있는 순대집에서 국밥 한 그릇 해야 겠다 싶어 슬슬 걸어 내려가는데 길 건너편에서 선배가 보였다. 피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선배가 밥 먹자는 곳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순대집이었고 그 시간, 선배는 대학생들과 헤.. 더보기
고라니 새끼 세 마리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자연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잘 모른다는 걸 알기에 요즘은 자연에 대해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라면 이사를 꼽을 수 있다. 새로 이사를 하고서 매일 아침마다 걷기를 하면서 주변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모내기한 논을 지나며 오늘은 얼만큼 자랐는지, 연일 찜통같은 더위에 물은 얼마나 빠졌는지 살펴보고, 밭고랑에 심은 고추는 어떻게 크고, 감자잎은 어떻고, 산딸나무는 어떻게 잎이 나는지도 살펴본다. 하루가 다르게 웃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내 마음도 풍성해진다. 어제는 사무실 뒤 보리밭에서 보리를 수확하는 농부들을 보았다. 어떻게 보리를 거두는 지 궁금해 후다닥 달려갔다. 밭가장자리부터 안 쪽으로 콤바인이 보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동.. 더보기
헌금봉투에 뚫린 구멍 대형교회 몇 곳에서 신자에게 받는 헌금봉투에 구멍을 뚫어 말이 많다. 교회쪽에서는 돈을 꺼낼 때 남는 돈이 있는 지 쉽게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바로 수긍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신도들은 금액이 다 보이게 되니 부담감도 꺼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한다. 고등학생 시절 헌금 문제로 나는 성당을 나가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충실히 성당을 다녔었다.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치 못했다. 그렇다보니 나의 주머니에는 돈이 거의 없었다. 하루는 성당에서 미사를 보았다. 어김없이 헌금을 거두는 바구니가 앞에서부터 옆으로 건네지고 있었다. 나에게도 헌금주머니는 부담이었다. 돈은 없고 바구니는 다가오고, 결국 나는 돈을 넣는 것처럼 헌금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가 뺐다. 그 순간은 이렇게 모면.. 더보기
검은등뻐꾸기, 홀딱벗고새 군대에 있을 때 말장난을 즐기던 인사장교가 있었다. 당시 극장에는 '아마겟돈'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두고 '아마 곗돈을 떼먹고 도망간 계주의 이야기'가 아니겠느냐며 태연스레 말하여 몇몇 장병을 배꼽빠지게 웃겼다. 또 하나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연천이 작계지역이라 훈련을 나갔을 때 일이다. 인적이 드문 깊은 골짜기에 우리 모두 쉬고 있었는데 새가 울었다. 새는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운다는데, 이 새의 울음소리가 참 특이했다. 인사장교는 이 소리가 "소박맞고"처럼 들린다며 아마도 시어미에게 소박맞은 아낙네가 새로 환생한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새소리가 "소박맞고" 들렸고, 우리는 기가 막히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사장교 덕에 또 한번 웃고 말았다. 하지만 .. 더보기
어르신, 노인, 시니어 아침 신문을 읽는 아내가 불만섞인 혼잣말을 한다. "노인이 언제부터 시니어가 된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한 마디 했다. "노인은 한자어야. 어르신이라고 써야 해." 텁텁한 입마냥 뭔가 개운치 않다. 그렇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우리 말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심지어는 망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부터 늙은이, 어버이, 어르신이라는 고운 우리말이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을 안 쓰고 노인(老人)이라는 한자어를, 최근에는 시니어(senior)라는 영어말을 버젓이 쓰고 있다. 환경만 보호할 일이 아니라 우리 말도 훼손하지 말고 지켜야 하지 않을까? 한 발짝 더 나아가 내 스스로 혹시 글을 쓰면서 잘못된 말을 쓴 적이 없나 생각해 보았다. 나도 어르신 대신 노인을 많이.. 더보기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야 할텐데 나는 더위가 싫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 열이 많고 땀이 많았다. 내 기억은 없으나 부모님은 땀많은 자식을 위해 수시로 땀을 닦아줬으리라 생각한다. 여름철이면 금새 옷이 땀에 젓고, 한 끼 밥을 먹을 때도 마치 운동한 것처럼 땀이 난다. 잠자고 일어나면 등과 맞닿은 침대와 베개가 젖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내 모습이 마치 몸이 허해 기력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여름이 다가오는 걸 반기지 않는다. 심지어 사계가 봄, 가을, 겨울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주변에 공공연히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어쩌랴. 환경파괴로 해마다 여름은 길어져만 가는걸..훔.. 이런 나를 위해선 가급적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앞서 살던 집은 최악이었다. 일호부터 십삼호까지 옆으로 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