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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뒤낭

<솔페리노의 회상>을 읽고서 6월이다. 이미 덥다. 그제보다 어제가 더웠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덥다. 실내에서 일해도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돋고, 더위에 지쳐 몸은 녹신거린다. 여름, 나에겐 참 힘든 계절이다. 그러고보니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현충일(6.6)과 한국전쟁일(6.25)이 포함된 달이다. 나라와 순국선열과 전쟁과 평화를 생각한다. 그런데..사람들은 왜 무더운 6월에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공교롭게도 19세기 유럽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자 비슷한 계절 6월에 벌어진 전투가 있다. 바로 1859년6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프랑스-사르드니아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이 이탈리아 솔페리노 언덕에서 벌인 다. 30만명 이상의 병력이 서로 대치하고 전선의 길이는 20km에 달했으며, 싸움은 15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더보기
앙리뒤낭의 업적과 인간적 면모 앙리 뒤낭보다 더 기구하고 비극적인 운명을 살았던 사람이 있을까. 그는 솔페리노 전투(1859년 6월 24일)의 참상을 보고 나서 자신의 목격담을 토대로 을 발표했다. 이 충격적인 경험은 훗날 적십자와 제네바협약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그는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누렸다. 그러는 그의 명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1867년 파산의 대가로 빚더미에 올라앉으며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한때 황제와 장관들로부터 귀빈대접을 받았던 그는 배고픔에 굶주리고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빈곤에 허덕일지언정 대의명분을 위한 투쟁을 끝까지 포가하지 않았다. 뒤낭은 전쟁포로의 보호, '세계도서관'사업, 여성의 권리, 국제적인 중재와 관련해서 지속적인 활약을 펼쳤다. 몇 년간의 비참한 떠돌이 생활을 끝에 .. 더보기
저금통을 들고 온 천사 세계 최대의 인도주의 기관인 적십자를 만든 장 앙리뒤낭(Jean Henry Dunant, 1828년 ~ 1910년)은 어린시절 자선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던 가풍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어릴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빈민가를 다니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보았다. 또한 당시 복지국의 담당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형무소를 내방하였는데 죄수들이 쇠고랑을 찬 채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어른이 되면 그런 야만적인 사회가 벌이고 있는 온갖 불평등에 반대하는 책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앙리뒤낭은 훗날 사회사업가가 되었으며, 1901년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를 보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훌륭한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의 총합이 그 사람 자체인 것이다. .. 더보기